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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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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카프카」의 작품에 『만리장성』이라는 게 있다. 여기서 그는 허망한 삶의 모습, 무한대한 권력 앞에 선 무한소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닉슨」대통령 일행은 24일 그 만리장성을 돌아보고 『이와 같은 거대한 장벽을 만들 수 있는 국민은…위대한 미래를 가질 것임에 틀림없다』는 찬사를 했다.
역시 정치가의 눈과 문학자의 눈은 전혀 다른 모양이다.
「닉슨」부처를 탄복케 한 장성은 사실은 진시황 때 것이 아니라 명 대에 수복한 것이다. 당초의 것은 벽돌이 아니라 판 책이라 하여 나무로 판짜듯하고 그 사이에 흙을 넣어 눌러 굳힌 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그 높이도 요새만큼 높지도 앉았던 모양이다. 이런 게 얼마만한 군사적 가치를 가졌었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원래가 장성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기마 민족이 쳐들어오려면 말에서 한번 내려야 했을 것이며, 이 때문에 전력이 어느 만큼은 저하될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 단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아무리 엉성한 장성이라도 2천 수백km에 걸쳐 성벽을 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중공의 사가들은 이 사실을 가리켜 통일국가를 이룩하고 중국민족의 발전의 극치를 보여 주는 장대한「모뉴먼트」로 여기고도 있다.
그러나 그냥 엄청난 민중의 희생을 강요했던 절대권력의 상징임을 또한 잊을 수 없다. 사마천을 비롯하여 중국의 옛 시인들도 즐겨 강제노동에 끌려나가거나 장성을 지키는 사람들의 노고를 노래했던 것이다.
왕창령의 칠언절구에도『진시명월한시관만리장정인미환!』이란 귀 절이 있다. 진나라 때 명월에 만리장성을 지키러 간 사람이 한나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강제노동에 끌려간 남편이 그리워 만리 길을 고생하여 찾아오니 낭군은 이미 죽어 있어 슬픔의 눈물에 장성이 무너지더라는 맹강녀의 전설은 바로 이 같은 당시사람들의 원한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런 절대군주도 죽고 나면 그만이었다. 『사기』 에 보면 진시황은 천하순유 중에 허무하게 죽고, 시체가 함양으로 옮기는 도중에 썩어버린다. 하는 수 없이 소금에 절인 생선들과 함께 실어 냄새를 감추었다. 나라로 곧 망하고 말았다. 역시「카프카」의 눈이 옳은 것 같다.
이런 감상에 잠김만큼의 여유가「닉슨」에게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를 중공에서는「이극송」이라 표기하지만 중립 계에서는「이극손]이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대만에서는「이극삼」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런 혼란이 뭣 보다도 그를 어리둥절케 하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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