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이극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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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제 정오의 TV중계는 많은 화제를 자아내고 있다. 『움직이는 중공인』을 처음 보는 호기심도 없지 않았지만, 이극송(「닉슨」대통령) 을 맞는 북경공항의 영접광경도 여간 의아하지 않았다. 언제나 환호 속에만 묻혀있는 미국대통령의 나들이를 보아온 우리는 그 「드라이」(무미건조) 한 환영 식에 「쇼킹」한 인상마저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막후에서 벌어진 예상 밖의 일들에 또 한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닉슨-모」회담이 의외로 「닉슨·주」회담에 앞서 이루어진 사실이다.
더구나 그 회담의 분위기는 『솔직하고 진지하게』라는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으례 이런 정상회담에서 표현되는 「외교적 언사」이상의 「리얼리티」가 있다.
또한 「닉슨」은 주은래와의 회담에서나 대 만찬에서나 눈에 띌 만큼 융숭한 예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정상회담의 표준시간(?)을 훨씬 넘게 무엇인가를 얘기하기도 했다.
이것은 공항에서의 담담하고 무표정한 「프로터콜」(의전)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미국의 「저널리즘」은 정말 종잡을 수 없이 일희일비의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바로 이것은 중공의 전통적인 외교방식이기도 하다. 시시 각각에 민감한 「스케치」로는 실로 그 전부를 이해할 수조차 없다. 중공외교는 이른바 「혁명적 원칙」과 「유연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중국인들은 그 「유연성」이라는 말을 영활 성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음-양」「선-악」등의 이원적인 사고가 중국의 전통적 사고양식인 것을 알게되면 곧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외교적 정치목표도 역시 그렇다.
중공은 「반미·반제」를 혁명원칙에 의한 그들 외교의 기조로 삼으면서도, 1955년이래 미-중공의 대사 급 회담은 단속적으로 계속해왔다. 중-소의 유혈 적인 대립 하에서도 역시 중-소 회담은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국가외교는 극한 대립의 긴장을 보이지만 이른바 민간인의 교류를 통한 「인민외교」는 퍽 우호적인 분위기로 이끌고 있는 예도 많이 보고 있다. 그뿐인가. 모택동의 혁명전략에 따라 외국의 「게릴라」를 충동하다가도 급전직하, 국가외교로 전환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버마」나 「실론」과의 관계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중국의 전통적 사고양식인 이원론에 의한 강 경과 유연성을 시의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리주의적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공항의 영접절차가 소홀했던 것은 「국제적인 선전」효과의 강경한 일면이며,「닉슨-모」회담의 예우 갖춘 영접은 실리주의의 유연한 일면인 것이다. 그것을 보고 한 시사평론가는 「신비한 실리주의」라고도 했다. 우리는 지금 양국의 그 흥미 있는 외교진수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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