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파나마운하 통과 5대 국 중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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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네로스 대사는 매일 아침 서울 한남동 자신의 집 뒤뜰에서 꺾은 작은 꽃을 양복 깃에 꽂고 출근한다.

파나마는 아직까진 낯선 나라다. 인구 340만, 국토 면적은 남한의 4분의3. 아메리카 대륙 한가운데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또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어주는 파나마운하가 있다.

 “한국은 배를 만들어 운항하고, 파나마는 그 배가 지나는 길목을 관리합니다. 한국 선박 950여 척이 파나마 국적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한국은 파나마운하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5개국 중 하나입니다.”

 지난 11일 아람 시스네로스(41) 파나마 대사를 서울 수송동 서머셋호텔 4층 파나마 대사관에서 만났다. 대사관은 파나마 110주년 독립기념일 리셉션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 1903년 분리독립했다.

 시스네로스 대사는 14일 열리는 리셉션에 국내 해운사, 선박금융업계 관계자 등을 우선 초청했다. 주한 외교공관의 대사 위주로 초대하던 예년과 달라진 모습이다.

 “미국으로부터 파나마운하의 운영권을 돌려받은 1999년 이후 파나마는 연 6%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죠. 파나마 국민들 사이엔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다와 운하, 그리고 운하를 지나는 선박, 그 선박이 내는 통행세 등은 파나마 경제의 핵심이다. 파나마 최대 경축일인 독립기념일 행사에 선박 관계자들을 초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나마운하 확장 공사가 끝나는 2015년부터는 더 큰 배들이 다닐 수 있게 돼 파나마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시스네로스 대사는 졸업 후 의료기기, 방송 프로그램 등을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대선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다가 2009년 마르티넬리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통령 특임대사로 한국에 왔다. 11일이 한국에 부임한 지 꼭 2년째 되는 날이라고 했다.

 “한국이 이렇게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라는 걸 전엔 몰랐습니다. 야구 경기를 보러갔다가 관람객들이 쓰레기를 비닐봉투에 넣어 도로 가져가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시민의식과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현재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서울 한남동 자신의 집 뒷산을 산책하다가 꺾었다는 하얀 꽃을 양복 깃에 꽂고 있었다. 매일 아침 다른 꽃을 꺾어 달고 온다는 게 대사관 직원들의 전언이다. 쾌활하고 거침없는 그는 “파나마는 언제나 여름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붉은색으로 변하는 나뭇잎을 봤다. 한국의 가을은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지난 7월 무기를 싣고 파나마운하로 진입하던 북한 선박을 파나마 정부가 적발한 일에 대해서는 “남북한 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며 신중하게 답했다. “하지만 식량을 실었다고 신고한 배에서 식량뿐 아니라 무기가 발견된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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