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미평고(소년원) 종이조형展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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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소년들은 밤낮으로 색종이를 접었다. 하루에 열시간 이상씩 접었다.공모전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후에 공 차러 나가지도 않았다.

주위에서 '사내놈이 무슨 종이 접기냐'고 놀려대도 꿈쩍하지 않았다. 어렵게 결심한 일이었다. 소년들에게 종이 접기는 시련이었고 도전이었다.

월드컵 축구 4강의 기적에 전국이 들썩거렸던 지난해 6월. 충청북도 청주의 한 '학교'에서도 기적은 일어났다. 하나 둘 모인 색종이 수만장이 거북선과 축구공의 형체를 띠기 시작했다. 작품명은 '힘찬 전진 밝은 미래'.

바다를 가로지르는 위풍당당한 거북선과 월드컵의 힘찬 기운을 본받고 싶었다. 접수 마감 전날인 6월19일에야 간신히 작품을 끝냈다.

그리고 열흘 뒤 청주 미평고교 학생 10명은 전국 중.고교 종이조형 공모전 대상(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수상 소식을 접한 소년들은 엉엉 울었다. 종이접기 강사 이용구(41.여)씨도 함께 울었다.

청주 미평고가 청주소년원의 다른 이름이란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심사위원들도 몰랐다. 자신들이 꼽은 최고의 작품이 사회에서 격리된 비행청소년들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없었다.

강사 이씨가 소년들을 처음 만난 건 2000년이었다. 처음엔 교도관과 함께 강의실에 들어가야 했다. 가위도 주지 않았다.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하다간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엄마처럼 대했어요. 잘못하면 혼내고 꾸짖고, 잘하면 칭찬하고 먹을 것도 갖다주고…. 그러니까 하나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그뒤에 가위를 내줬어요."

공모전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건 지난해 2월. 소년원 측을 설득하고 각종 서류 절차를 밟는 데만 한달이 걸렸다. 아이들에게 '삶은 허송세월로 보내는 게 아니다'라는 걸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잘 따라왔다.이씨는 소년원 담장 안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경비는 모두 이씨가 부담했다. 지금은 10명의 소년 모두가 사회로 돌아갔다. 상을 받고 나서 아이들은 모범수로 분류돼 출소 일자가 당겨졌다.

이씨는 한 아이가 지난 연말 출소 전에 남긴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다닌다.

"선생님이 아니라 어머니란 생각이 듭니다.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날씨가 추워요." 편지는 이씨가 아이들에게 맨처음 가르친 종이학 천마리 사이에 끼여 있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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