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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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너는
우주가 하나로 집중할 때
비로소 열리는 눈이다
보석처럼 견고한 고독의 사슬로 일체의 빛을 묶어
흔드는 손이다
온 생을 한 가닥 활줄에 걸어
죽음을 겨냥하는 사수의
한 치의 흐트림도 거부하는
엄격한 포즈.
중심을 깨뜨리는
모순의 얼굴이다
날카로운 혼란의 춤, 꽃이여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고 나면
잡힌 것은 애매한 그림자다
돌아서면
슬픈 몸짓으로 다가오다가
손을 주면 이내 사라지고
잡는 방법을 전혀 포기할 때
남 몰래 내 안에
깃을 치는
너는 한 오리 율동이다
내 어린 시혼의
현을 퉁기는

한밤중 머언 하늘 끝에서
우주의 비밀처럼 빛나는
별이 떨어질 때
가장 신비한 모습으로 피어나서
아름다운 소멸을
배웅한다
스스로의 무게로
가지를 떠난 열매가
한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질 때
가슴을 드러내어
완성의 형식을
부여한다
눈부신 빛의 뒤에 숨어서
온갖 빛 나는 것들을 도려내는
어둠처럼
끊임없이 떨어지는 것들 속에서
하강의 질서를 다스리는 것은
꽃이여 너의 눈짓이다.

<입선 소감>별과 만날 희망 안 버리고|내일 위해 헌 그물을 꿰매며…
테두리 밖에서 서성거리며 남몰래 그물을 던져 보지만, 걸리는 것은 초라한 내 정신의 비늘조각이다. 어쩌면 정확하게 겨냥을 해도 가늠쇠 위에서 꽃은 이미 나를 거절하고 있다.
『시는 천사를 이별하고 악마와 속삭이는 것』이라던 H형의 말을 왜 나는 반박하여 주지 못했을까? 어떻게 표현하든 그것은 당신의 언어밖에 있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 바라보는 저 수많은 별들이 이미 옛날에 그 자리를 떠나간 것이더라도, 언젠가는 나의 눈이 아주 정확하게 어느 별의 시선과 만나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버리고싶지 않다. 「판도라」상자의 마지막 선물마저 거부할 용기는 사람에게 주어져 있지 않을 테니까.
내일 아침 또 하나의 허무를 낚기 위하여 상한 그물을 다시 꿰매야겠다. 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와 새해 인사를 드린다.

<약력>
▲1945년 서울 출생 ▲1964년 서울 사대부고 졸 ▲l968년 서강 대학 독문학과 졸 ▲1970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 문예 시 당선 ▲현재 763-21 공군 제5692부대 작전부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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