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나라살림 6,473억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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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해의 나라살림 규모가 6천4백73억원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는 정부가 당초에 제안한 6천5백93억원에서 겨우 1백20억원이 삭감된 규모이다. 올해 본예산보다 23·5%나 늘어난 새해예산은 산금채·주력·도로·주택 등 각종 상권과 국고상무부담행위를 합쳐 약5백억 규모의 실질적자요인을 내포하고있다.
야당 일각에서도 6백억원 정도를 삭감하겠다고 별러온 것이 겨우 2% 삭감으로 끝난 것이다.
해마다 나라살림을 다루는 선량들의 태도가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저 몇푼 깎아서 생색이나 내자는 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국방비는 오히려 53억원을 더 늘렸다. 6천4백73억원의 새해예산은 지금까지의 경제개발예산에서 안보예산적 성격으로의 전환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심의과정에서 삭감된 1백74억원 중에는 경제개발의 상징적 사업처럼 추진되어온 종합제철 15억원을 비롯, 기계공업자금 5억원, 산업자금 25억원 등 투융자부문에서 1백8억원이나 잘려나간 대신 소비성 경비로 항상 지탄받아온 일반경비는 겨우 8억원 삭감에 그쳤고 공무원 신규증원을 인정치 않기로 함에 따라 봉급 및 연금에서 20억원, 지방교부금에서 36억원 등을 깎았을 뿐이다.
반면 국방비는 정부가 요청한 1천6백58억원보다 53억원을 더 늘려 1천7백11억원을 책정함으로써 예산구성비는 올해의 24·3%에서 26·4%로 2·1「포인트」나 높아져 지난 67년이래 제일 높은 구성비를 나타냈으며, 투융자는 30·1%로 올해보다 2·4 포인트나 줄어들어 68년이래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함으로써 이번 예산의 안보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했다. 이는 곧 국방장관의 표현대로 60년대의 경제제일주의에서 70년대의 안보제일주의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투융자부문 세출의 대폭 삭감은 정부로 하여금 새해 투자계획의 일부 수정은 물론 안보예산의 비중이 점차 늘어날 전망에 따라 3차계획의 투자계획까지도 전면 조정하지 않은 수 없게 되었다.
점증하는 국방비부담 이외에도 수출신장의 둔화 등 내외경제여건의 악화라는 이중의 장애요인은 1조3천7백억원으로 책정한 3차 계획상의 정부투자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으며 이는 앞으로 정부가 해결해야할 최대의 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입면에서는 내수세를 정부 원안보다 1백82억원 삭감, 국민조세담당경감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게 만들었고 전매익금에서 20억원을 깎았다. 내국세 삭감은 갑근세면세점인하로 58억원, 사업소득세 기초공제액 인상으로 29억원으로 깎아 그나마 체면을 유지했으나 저소득의 조세부담능력에 비추어서는 아직도 미흡하다.
내국세 삭감에도 불구하고 GNP에 대비한 조세담당율은 15·7%로 올해보다 0·2포인트가 늘어나고 있으며 새해에 국민이 내야할 세금은 올해보다 7백16억원이 더 많은 4천3백38억원이나 되어 불황의 장기화, 물가불안의 지속과 함께 안방살림을 매우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수출목표 18억불의 재조정과 함께 최근 경기여건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총자원예산안 수정 등 일련의 정책적인 보완노력이 이번 예산심의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우리예산의 경직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 <김영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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