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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7년…부실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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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의 흐름에 따라 잘되는 기업도 있고 안 되는 기업도 자연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각종 특혜와 지원을 받아 건설된 차관 업체들을 비롯, 기업 전반의 부실화현상이 두드러져 경영부실이 일반화해 가는 경향을 보이고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그 대부분이 자력에 의해 건설된 기업이 아니라 정부 및 금융기관의 각종지원이 투입된 만큼 그 부실화나 도산은 바로 국민경제의 손실과 함께 국민부담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국정감사 때 채무업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의 부실화문제가 집중적으로 파헤쳐진 것은 이처럼 민간기업의 부실이 전체 국민부담과 너무 깊은 관계에 있는 때문이었다.
국감과정에서 공식 확인된 부실 차관기업은 민간능력업체 1백47개 중 26개이며 은행관리기업체는 차관업체가 아닌 것을 포함하여 58개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부실 차관업체가 은행관리하에 있긴 하지만 26개 업체 중 은행관리를 받지 않고 있는 업체는 고려제지, 신광모방, 공영성업, 공성산업, 백흥섬유, 계성제지, 협동제관, 동아금속, 동양「시멘트」, 동아「타이어」 등 10개로 나타났다.
은행관리기업체를 바로 부실기업으로 연결시킬 수는 없지만 이러한 분류상의 차이는 눈가림에 불과하고 마땅히 은행관리를 받아야할 기업이 은행관리를 받지 않고 있는 것뿐이다.
그 이유는 은행측이 부실차관업체를 직접관리하여 채권보전에 나설 경우 더 물려 들어가기 때문에 되도록 관리를 피하고 있는데서 온 차이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은행관리기업체가 70년 말의 75개에서 9월말 현재 58개로 줄었다고 하지만 실제 은행관리를 통해 경영상태가 자전되어 관리해제가 된 것은 드물며 은행이 귀찮아서 되도록 손을 때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은행관리의 형태가 법원지정에 의한 법정관리, 출자에 의한 지주관리, 전면관리 및 부분관리로 구분되는데 이중 채권규모가 커 전면 또는 부분관리를 하고있는 몇 개 업체를 빼고 나면 거의 다 부실업체이고 지금까지 정리된 형태가 경영주체변경과 공채위주였지 경영상태 호전에 의한 관리해제가 적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고있다.
부실차관업체로 지목된 26개 업체의 업종별 유형을 보면 섬유부문·제지·정설·제철 및 강업 등이 많은 편이며 그밖에 어업·「시멘트」·금속업·「타이어」공업·목재 등이 일부 섞여있고 이중 규모가 큰 인천제철은 적자누계가 25억원, 한국「알루미늄」16억원, 한영공업 10억원, 한국철강 15억원, 한국마방 10억원 등 1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업체만도 5, 6개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 10억원 이상 결손 업체들은 모두 산은에 안겨져 있으며 신은의 주식투자액은 ▲한국철강 5억8천8백만원▲한영공업 14억1천3백만원▲인천제철 35억6천9백만원▲한국 「알루미늄」 8억3천7백만원 등이다.
한편 부실상태는 아니라고 밝혀진 1백21개 민간 차관업체의 경우에도 과연 이들을 부실요인이 없이 자력성장이 가능한 업체로 볼 수 있는가에는 상당한 의문이 있다.
이 가운데는 현재 불황업종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있는 「시멘트」나 소 모방공장들이 포함돼 있는가 하면 대불을 몇 번씩 일으킨 업체들도 섞여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상업체 범주에 들어있는 한국전기치금·대선조선·신흥제지 등은 경영상태가 나빠 산은의 전면관리를 받고 있으며 외환은행관리의 대명목재는 기업 합리화위원회에 정리 대상으로 올라있는 업체이기도 하다.
이밖에 69년의 부실기업정리조치가 아직 매듭을 짖지 못한 동양화학, 정비조치 이후 같은 계열의 삼양어업이 완전분리 해체되고 현재 제일은행의 전면관리를 받고있는 삼양하해 등이 버젓이 정상업체 명단에 올라있으며 은행이 채권보전의 위험성 때문에 관리를 하고있는 업체들이 상당히 포함돼있다.
이러한 혼선은 부실기업의 범주를 대불이 1년 이상 계속되거나 자기자본이 완전히 잠식된 경우 또는 가동율이 50% 미만인 업체에만 한정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부실기업을 최악의 기준에 의해 선정했는데도 가동중인 민간차관업체의 18%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실기업의 범주에는 가동율이 50% 이상이라도 타인 자본 부담 때문에 출혈생산을 계속하고 있는 업체, 또는 정상가동이라도 시장 사정이 좋지 않아 기업이윤이 부채를 꺼 나갈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업체 등은 조만간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거나 사실상 부실상태에 있는 업체이기 때문에 마땅히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부실기업대책은 이러한 기업의 현실적 양상을 충분히 고려에 넣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기획원에 의하면 앞으로 부실기업으로 지목된 26개 업체를 정비하게되면 69년의 부실기업정리조치가 끝난 19개 업체를 포함, 45개 업체에 달하며 가동중인 민간차관업체 1백47개에 대해 30·6%의 비율을 나타내게된다.
이렇게 되면 차관이 본격화 된지 6, 7년만에, 그리고 차관상환이 완전히 끝난 기업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부실기업은 30%를 넘는 정도로 차관정책의 허점이 점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해서 얼마나 차관을 더 들여다 경제개발에 투입해야하는 문제에 앞서 이미 들여온 차관을 어떻게 관리함으로써 경제적 손실을 막아야 할 것인가의 부실기업대책이 선행돼야 할만큼 우리의 경제사정이 악화돼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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