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섬 울리는 식수난|40여일째 목이 타는 북제주군 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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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녀의 선이라는 북제주군좌천 향우도 섬 마을은 개인별 식수 「카드」를 들고 물을 받으러 온 아낙네들과 이를 확인하려는 긴급 식수대책 본부 요원이라는 마을 청년들 사이의 말다툼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 10월 초순부터 가랑비가 몇 번 뿌렸을 뿐 40여 임자 계속 비가 오지 않아 이 마을은 극심한 식수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섬사람들은 『여름철도 아닌 겨울철에 이렇게 물난리를 겪을 줄은 몰랐다』며 물 배급 카드를 들고 말라버린 웅덩이 주위에 몰려 물 걱정이 태산같다.
이 마을은 남제주군 성산면 성산항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져 있는 면적6.646평방㎞의 속칭 해녀의 섬, 6백92가구 3천7백94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 섬은 바닥이 펀펀해서 농토가 넓어 일직부터 사람이 산 곳이나 샘물이 나지 않기 때문에 식수난을 예부터 겪어왔다.
웅덩이에 괸 빗물이 유일한 식수원이었고 5∼6년 전부터 슬레이트 지붕이 생기면서부터는 집집마다 뜰 안에 웅덩이를 파 놓고 지붕에서 흘러내린 물을 받아 허드레 물로 써 왔던 것.
해녀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벌고 밭농사도 꽤 잘돼 그런 대로 살아왔는데 지난10월 초순부터 모진 가뭄이 몰아 닥쳐 섬 안 11개 소의 웅덩이 가운데 두개를 빼고 모두 말라버렸다. 이 두 웅덩이에 남아있는 물이 2백여t. 이때부터 식수난 아닌 식수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마을 청년들은 궁리 끝에 지난12일 식수난을 해결하는 비상수단으로 하루 1가구에 물 한동이씩(20ℓ) 만을 나눠주기로 하고 물 배급 카드를 만들었다.
청년회장 김정남씨(25)등은 그대로 두었다가는 4∼5일 안에 물이 아주 말라버려 큰일이 날 것 같아 개인별 식수 카드제를 실시, 남은 웅덩이에 확인 반을 고정배치, 밤낮으로 감시하기 시작했다.
물이 1백50t쯤 괴어있는 하우목동 양방통 웅덩이는 전에는 빨래터이었던 탓인지 글자근대로 흙탕물로 두레박에 담으면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하다.
그러나 물난리 속의 이곳 섬사람들에게는 이물이 음식을 만드는데 쓰이는 물이고 제삿집 에 특별히 배급되는 고급 식수가 돼 있다. 냇가에서 나오는 샘도 있기는 하나 물이 너무 짜서 밥을 지을 수는 없다.
웅덩이 입구엔 짚단으로 초소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긴급 급수대책본부라는 팻말을 세운 다음 마을 청년 6, 7명이 물 허벅(제주 특유의 물동이)을 짊어지고 물려든 아낙네들의 물 배급 카드를 확인하느라 말다툼이 그칠 새 없다.
물 카드를 잊고 그냥 왔다면서 아침에 한 동이 길러간 어느 아낙네가 다시 한 동이 길러왔다가 청년들에게 들켜 쫓겨났으며 하우목동 김옥화 노파(76)는 두 번째 물을 긷고 나오다 걸려 물동이가 웅덩이에 내 동댕이 처졌다.
허일선양(16)은 16일 두 번째도 아니고 처음으로 물을 길러왔는데 감시 청년들이 잘못보고 물동이를 깨버렸다고 항의했다.
빨래는 아쉬운 대로 가축 급수장에 마르다 남은5, 6평의 늪에 괸 물에서 번갈아 가며 헹구고 있었으나 고운 빨랫감은 비가 오기만 기다려 쌓아두고 있는 형편.
문철남씨(33)는 단물에 세수해 본지 30여일 이라면서 타월에 물 적셔 문질러 닦은 것이 고작이라 했고 연평국민교 6학년 김보향양(13)은 학교 교실청소도 물걸레를 쓸 수 없어 양초로 닦고 있다한다.
청년회 간부라는 윤남일씨(27·하우목동1220)는 군이·지난68년 8백여 만원의 예산으로 대형 저수지까지 만들었으나 물이 괴지 않아 실패했다면서 하루빨리 보수 공사를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제주=서송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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