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기원 여사 기행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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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불안 안은 풍요. 미국>
유럽을 동아 미국에 들어서자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크다는 느낌이었다. 길도 넓고 크고, 차도 크고, 건물도 크고, 사람들도 크고, 「코피」잔도 크다.
그 큰 「코피」잔에다 인심 좋게 철철 「코피」를 부어줄 때는 고맙다기보다 짜증이 났다. 거기다 설탕·「밀크」를 치면 정말 들고 마실 수가 없을 정도다.
우선 이렇게 피부로 먼저 와 닿는 것이 크고, 넓고, 풍요하고, 그리고 그만큼 인심이 후하다는 느낌이었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끝도 없는 땅덩이. 그래도 이 땅덩이 위에도 지금 불경기란 삭풍이 불고 있고, 어떤 용단이 필요한 시기에 처해있는 미국은 마치 몸살을 앓는 미련한 큰 동물이라고나 할까? 거기다 너무나 발달된 기계문명에 지친 젊은이들이 돌파구를 못 찾아 마치 자폭하는 듯한 여러 가지사건들-. 그건 그런 대로 이유가 있고 할말이 있을 것도 같았다. 사람이 배부르고 평안한 것만으로는 인생자체에 만족 못한다는 원초적인 불만이 이해가 갈 듯도 했다. 이 많은 요소를 지닌 미국은 지금 진통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많은 것을 겪고 이룩한 나라인 만큼 무섭도록 짜인 질서와 규율, 거기다 「컴퓨터」가 이끄는 사무적인 생활, 그 저력은 무섭게 보였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또 노소의 차별 없이 근로의 정신이 그토록 철저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한가한 사람이라고는 그야말로 연금을 타서 양로원에나 들어가 있는 노인들이라 할까? 그만큼 나는 우리 땅에서 못 느낀 다른 피곤을 느꼈다. 그야말로 치고 몰고 쫓기는 것 같은 각박감이 있었다. 시간의 분배 속에 사는 것 같았다. 「워싱턴」회담 때도 많은 미국대표 여성들한테서 얻는 소감인데 그들은 검소하고 그리고 봉사하기를 즐기고, 또 남을 믿는 마음이 순진할 이만큼 강한데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이것이 그들의 생활신조이다. 이런 친절과 봉사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있어 꼭 외국인을 대할 때 필요한 「제스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미국전역에 걸쳐 또 하나의 유행은 「해피·스마일」(행복한 웃음)운동의 전개이다. 즉 웃으며 대하자, 그래서 활짝 웃는 만화로 그린 그림이 곳곳에 붙어있고 심지어 은행원의 가슴에도 이 「배지」가 달려있는가 하면 아이들 장난감, 젊은 여자들의 「액세서리」에 까지 이것이 대유행이다.
우리말로는 웃는 집에 복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그토록 대인관계에서 부드럽고 웃음 띤 얼굴로 대하는 그들이 또 이런 운동을 하니 기막힌 일이다.
끝으로 우리 나라에도 뒤늦게 들어온 핵가족문제가 미국본고장에서는 오히려 많은 문젯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현지에서 들었다.
어릴 때부터 독방에 혼자 재우는 습관, 그것은 의타심을 버리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우유와 빵 이외에 유년기에 받아야만 되는 피부로 느끼는 엄마의 정이 필요한 것 같다. 꼭 포대기를 안고 자야 잠이 오는 아이, 커서도 고무젖꼭지를 물어야 잠이 오는 아이, 그 아이들이 커서는 또 직장에 나간 엄마가 집을 비우면 목걸이 대신 열쇠를 걸고 학교에 갔다와 빈집에 들어와서는 냉장고에서 제 먹을 것을 꺼내먹어야 되는 살풍경한 모자간. 일찍 독립해서 자아를 인식하고 내버려진 것 같은 존재. 그들이 커서 부모에게 하는 말은 『당신들은 나를 낳아 주었을 뿐이지 우리에게 다른 무엇을 주었느냐』고 한다고 한다. 교육도 국가에서 시켜주지, 우리같이 부모의 손발이 닳도록 교육에 피와 돈을 빨리는 현실과 다른 미국은 지금 양상이 다른 저항을 부모들이 받고 있다.
자식이 버젓이 있는 노인들이 양로원에서 버려진 동물같이 혼자 죽어간다는 사실은 핵가족이 낳은 슬픈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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