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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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생은 무상과 쇠멸을 면하지 못한다. 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노·병·사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것은 누구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불타는 바로 이것을 가르쳤다. 그는 인생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리라고 수 없이 설법했다. 『「아난다」여! 일체의 상에 마음이 끌리지 않고, 하나 하나의 감각을 없애 가는 것에 무상의 경지로 마음이 통일될 때, 거기에 건전한 신체가 발견된다.』
불타는 이렇게 권유한바 있었다. 『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의지할 곳은 자기자신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등명」「법등명」이 그런 경지이다. 그러나 불타는 단호히 말하나. 자기를 또 초극하라고-.
『싸움터에서 백만의 적을 이기는 것보다 한사람의 자기에게 이기는 자야말로 최상의 승리자다』
불타는 이런 깨달음 속에서 『이세상의 모든 것이 아리땁구나!』하고 감탄했다. 인생에 대한 달관이다. 이런 웅장한 달관의 모습을 엿보고 하루는 악마가 나타나서 석가에게 죽을 것을 권했다. 『세존이시여!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석가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예언했다. 『할 일을 마치면 열반에 들겠다. 그것은 석 달 뒷일이 될 것이다.』그는 「무상의 준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속된 눈으로야 그런 자기를 쉽사리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석가는 모든 집착을 끊고, 자기를 초극한 상황에서 「투명한 시간」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석달 후」가 지났다. 「쿠시나라」의 「히리냐바티」강기슭 「사라」쌍수 그늘에서 그는 조용히 열반의 시간을 맞았다.
『그만 두어라, 「아난다」여. 슬퍼 말고 애통해 하지 말라. 나는 일찌기 말하지 않았더냐. 사랑하는 사람, 스승한 사람과도 언젠가는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무릇 태어난 자와 만들어진 것으로서 쇠멸하지 않는 것이 있겠느냐?』「죽음」이란 실로 인생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최선의 엄숙한 교훈이다. 인간의 욕행이나 그에 따르는 번뇌 같은 것은 그 죽음 앞에선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그럴수록 우리는 「적멸」을 생각하며 죽음의 예시 속에서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오늘, 한국 불교계의 원로스님 청담이 뇌일혈로 입적했다는 부음을 들으며 새삼 그런 생각들이 새로와 진다.
제행무상·제법무아·열반적정-.우리는 여기서 고요한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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