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북 평 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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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4일 백악관은「닉슨」미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헨리·키신저」씨가 17일(한국시간)「워싱턴」을 출발, 북 평에 향 발한다고 발표했다.
「닉슨」대통령의 북 평 방문에 앞서「키신저」씨가 10월 20일부터 30일 사이에 북 평을 방문하리라는 것은 이미 발표된 바 있었으므로「키신저」씨의 이번 북 평 향 발은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북 평 방문이 비록 앞으로 있을「닉슨」북 평 방문의 예행 연습적 성격을 띤 것이라 하더라도 역시 그 사명은 매우 주목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례적으로 정상급 수뇌회담에 있어서는 그보다 앞서 하급외교「채널」을 통한 접촉과 협상에서 대충 합의를 마련하는 것이 상례로서「키신저」씨는 이번 방문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거의 결정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키신저」씨가 이번 북 평을 방문하면「닉슨」북 평 방문에 대한 구체적 시일은 물론 토의의제·수행원 등 전반문제가 토의될 것으로 보여지며, 그러는데 있어서는 주요문제에 대한 미국 측 의사가 전달되고 중공의사가 타진되어 원칙적인 타협을 보게 될 것이며, 앞으로의「닉슨」·중공 수뇌회담에서는 그것을 마무리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이번 「키신저」씨의 북 평 방문과 더불어 어떤 문제가 어떻게 토의, 합의될 것인지는 지금으로선 속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날카롭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가운데서 한국문제가 토의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중공과의 회담에서 한국문제를 먼저 꺼내지 않을 것을 한국 측에 다짐한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주은래 중공수상의 발언을 미루어 볼 때 중공 측이 한국문제를 끄집어낼 것은 거의 틀림이 없다.
우리는 이미 본 난을 통해서 주은래가 제안할지도 모를 이른바「한반도 평화회담」에 숨은 중공의 흉계를 경계한 바 있고, 미국이 그에 말려들지 말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또 오늘날의 외교가 주로 막후 또는 비밀외교 방식을 통해 문제를 타결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여 미국이 한국 민의 의사에 반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피력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14일 우리 국회에서는 여-야 의원 80명이「닉슨」대통령의 중공방문에 대비해서『우리의 참여와 동의 없는 여하한 한국문제 토의나 결정에도 반대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미-중공 회담에서 주은래가 요구하고 있는 한반도 문제토의의 저의에 대한 우리 국민의 경계와 우려를 대변하는 것이다.
지난날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강대국간의 밀약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중공회담 역시 날카롭게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지난날「태프트-가쓰라」밀약이라든가「얄타」협정이 한국에 대해서 무엇을 가져왔는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중공 회담에서 우리가 거듭 미국에 강력히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한국과 협의 없이 그 어떤 결정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의 전통적인 우의와 신의를 보거나, 또는 굳게 다짐한 우리 나라에 대한 공약으로 보거나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 기회에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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