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불황 속에 작품집 붐-김치수<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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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에 정부에서는 「문예진흥법」이니 「문화·예술지원금」이니 하여 새삼스럽게도 문학·예술에 대한 관심의 도를 높이고있다. 이것은 말을 바꾸면 그 동안 문학·예술의 창작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문학의 경우 독자가 많지 않았다는 것도 의미한다. 이런 사회풍조가 배금주의에 미만해 있고 부의 편중으로 인해서 국민생활이 피폐해 있을 때에는 가치관이 정신보다는 생존자체에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물질에 근거를 두고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일는지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문학은 생활의 현장으로부터 삶의 본질과 사회의 구조와 역사의 방향에 이르기까지 그 핵심으로부터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상 문예부흥은 정부에서 제정한 법률이나 지원자금에 의해서 이룩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몇 지도자나 어떤 계층의 희망에 의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여건을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관찰하지 않나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말을 바꾸면 모든 역사가 그 사회의 내적인 요구 혹은 필연성에 의하지 않는 한 형식적이고 구호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함을 의미한다.
문제는 항상 근본적인데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짊어지고 있는 고민이다.
문학은 공장건설이나 국민소득과 같이 수의 개념으로 파악될 수 없는 것이며 생산목표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기 때문에 한국문학에 주어진 짐은 너무 큰 것이다. 한 사회에 개선되어야 할 요소가 많을수록 문학의 현실적 역할이 강조된다. 가치관의 전도에서 오는 반정신주의에 대한 지성으로서의 문학, 현상을 종적인 연관 속에서 파악하려는 역사주의, 횡적 연관 속에서 파악하려는 구조주의 등 한국의 현실에서는 문학이 해야할 이야기, 취해야 할 태도는 너무 미해결인 채 놓여있다.
이 달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된 것이 그러한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그러나 서정인씨의 『산』(월간중앙)과 하근찬씨의 『죽창을 버리던 날』(창조)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런 대로 위안이었다.
『산』은 이 작가가 『강』에서 추구했던 시골의 풍속적 연구라는 일련의 주제를 재현하고 있다. 어느 섬의 중학교 교사로 전임하는 주인공의 출발에서부터 섬에서의 생활의 단편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시골생활의 기본 선율이 허무주의적 정신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가족은 육지에 두고 <물에 상륙할 꿈은 거의 포기>하고 <그저 탈없이 바람 없는 곳에서 정년퇴직이나> 맞으려는 교장, 타인의 <무능을 비웃을수록 자기가 유능해지는 것이라고> 믿고, <야심이 많고><언젠가는 뭍으로 올라갈 확신>을 갖고 있으며 겉으로는 대단한 교육자적 사명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제자를 강간한 교감, 그리고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주인공 등은 시골생활의 안일주의, 나쁜 의미의 출세주의 속에서 작가는 자기자신의 정당한 위치나 역할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을 인식하고 삶의 비탄을 허무주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강』에서 보여준 삶의 실감이나 밀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죽창을 버리던 날』은 이 작가가 최근에 즐겨 다루고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담이다. 일제의 압박 속에서 맞은 해방의 감격이 중학교시절인 작자에게 가졌던 의미를 다시 음미해보는 이 작품은 동세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려 주고는 있지만 『그 해의 삽화』와 같은 설득력을 동반하지 못한다. 회고담이 수반해야 할 <추억의 현재화>가 설득력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는 박순녀씨의 『별 같은 아이』(신동아)나 송완희씨의 『추도』(현대문학)도 마찬가지다. 회고담이 아니라 오히려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사소한 것>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사소한 것>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에 설득력이 감퇴해 버리고 「테제」소설의 인상만을 남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작의 불황 속에서 많은 작품집의 출간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인 것 같다. 전라도 농촌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해서 자기과신이 없는 솔직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 천승세씨의 『감누 연습』(문조사간), 자기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세계 현실을 항상 2중적 구조 속에서 파악함으로 써 그것의 의미를 두드러지게 해주는 우수한 단편들로 엮어진 이지준씨의 『별을 보여 드립니다』(일지사간), 짙은 사투리로 「샤머니즘」의 세계를 작가의 고뇌로 승화시킴으로 써 독특한 세계를 이룩하고 있는 박상강씨의 『박상강 소설집』(민음사간), 주술적 언어로써 어느 마을의 풍속의 변천 과정을 뛰어나게 보여준 방영웅씨의 『달』(홍익출판사간), 외국유학생의 고민을 통해서 한국인의 패배주의와 한국의 왜소성을 극복하려 하고 기독교의 「샤머니즘」적 세계를 비만하고 있는 오승재씨의 『아시아제』(호서문화사간)등은 독특한 작가의 세계와 한국의 현실에 대한 뛰어난 인식을 뒷받침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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