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화의 지정통화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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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일 협력위 제7차 합동상임위는 29일 폐막하면서 두 가지 중요한 건의를 했다한다. 하나는 일본의 「엥」화를 법정통화로 지정할 것을 한국정부에 건의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뱅크·론」 등 방법에 의해 차관공여를 증액해 줄 것을 일본정부에 건의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건의는 외견상 별로 뜻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하겠다.
우선 일본의 원화를 지정통화로 결정하는 문제는 한·일 무역구조의 특성으로 보아 한국측에 유리한 것이 못 됨을 직시해야 하겠다. 물론 달러·파운드·마르크 등 이미 지정통화로 지정된 통화가 많이 있어 일본의 원화가 이에 추가된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아직 지정통화로서의 유통성이 공인되지 않고 있는 원화를 우리가 앞장서서 법정통화로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원칙상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 한사코 원하지 않던 원화의 지정통화화를 이제 거꾸로 일본측이 요청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간파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닉슨」의 경제조치로 국제통화 질서가 교란됨으로써 무역거래가 크게 제약되어 일본도 적지 않은 불황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수출마저 환율상의 혼란 때문에 정체되는 것은 일본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명약관화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일 무역이 달러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방법으로 무역을 계속하는 경우, 일본은 원화의 평가절상에 따른 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측은 이러한 환 리스크를 한국측에 떠맡기기 위해서 원 베이스로 무역하자는 제의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으므로 한국측이 이 문제를 충분히 계산하지 않고서 원 베이스 무역거래에 응한다는 것은 우리가 자칫 손실을 자초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물론 「달러·베이스」로 무역을 하는 경우에도 수출가격을 일본이 인상해서 환 리스크를 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변동환율을 채택하고 있는 일본이 시장환율 이상으로 환 리스크 요인을 공공연히 가산해서 수출가격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약삭빠르게 원 베이스 무역을 들고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한·일 무역이 균형상태에 있다면 달러 베이스 무역이든 원 베이스 무역이든 환 리스크 문제는 크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의 대일수입이 8억달러를 넘고 있는 대신 대일수출은 2억달러 수준이므로 원「베이스」무역을 하더라도 우리가 회화를 조달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대일무역 수지적자 5억7천만달러 분은 여타 수출로 번 달러를 가지고 결제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다시 말해서 연간 5억7천만달러의 대일 수입분에 대해서 우리가 환 리스크를 계속 져야 한다는 것이 원화의 지정통화화에 숨어있는 문제점이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의 「뱅크·론」 등 차관공여의 증대는 외환사정이 악화된 우리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뱅크·론」도입에 결국 대일수입을 촉진하기 위한 매개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뱅크·론」 등 차관확대가 우리의 외환사정을 당분간 완화시키는 이득과 교양해서 우리의 대일수입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손실을 냉정히 간단해야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당국은 우리의 현실에서 차관증대→수입증대라는 지난날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신명한 것인가, 아니면 수입억제→성장률인하로 구조적인 모순을 차차 시정해 나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우선 판단하고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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