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기고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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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 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
아시아미래연구원 상임대표

일본의 보수우경화로 한국의 진로가 갈림길에 놓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정부 출범 이후 독도 영유권 주장,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군 위안부 역사 왜곡 등으로 한·일 관계가 눈에 띄게 불편해졌다. 게다가 동맹국이 공격받았을 때 반격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해 이를 우려하는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국가주의적 방향 선회는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국민의 좌절감,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불안감, 무기력증 탈피에 대한 강박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2010년 세계 제2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준 것에 대한 자존심의 상처가 자극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아베노믹스’를 내세워 금융 완화와 공공 투자를 통한 디플레이션 탈출을 시도 중이다. 정치적으로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전후 체제로부터 탈피를 강조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 9월 자위대 고위 간부회의에서 “세계의 파워 밸런스가 지금 크게 변화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일본 주권에 대한 잇따른 도발에 대응키 위해 “적극적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일본 자신의 평화도 지킬 수 없다”고 군사력 강화 의지를 밝혔다.

 일본의 선택으로 한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가 일본의 국가주의적 선택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는지다. 우리는 일본의 노골적인 보수우경화와 집단적 자위권 도입에 대해 앞장서서 반대하고 비판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이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 없이 재무장을 시도하는 것에 신랄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한·일 관계의 경색이나 단절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추세로 봐 일본은 당분간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는 별도로 한·일 관계 악화와 대화 실종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으로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

 둘째, 국제사회가 일본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최근 미국은 일본과의 ‘2+2(외교안보장관)’ 회담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재검토 노력을 환영하며 일본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의지를 분명히 했다.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중국을 의식하는 미국은 ‘아시아 중시’ 정책에 따라 미·일 동맹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미 연방예산 자동삭감 조치와 연방정부 폐쇄 위기 등 국내적인 제약조건이 일본의 안보 역할론에 무게를 실어 준다. 영국·호주 정부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유지·발전시키면서 일본의 건설적인 역할을 유도하고 중국과 전략 대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고 남북 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 갈등이 회복 불능으로 가기 전에 한·일 대화를 복원하고 일본이 위험한 국수주의로 가지 않도록 자세 전환을 촉구해야 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는 평화 유지에 도움이 돼야 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한국의 국익에 반하거나 동북아 군비 경쟁을 촉발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아베 정부가 과거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의 반성과 사죄의 정신을 계승하고 응분의 피해 보상을 할 것을 천명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것은 동북아시아에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제야말로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정치력과 외교력을 발휘할 때다.

박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 아시아미래연구원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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