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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늦지 않게 TPP에 참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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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조만간 참여할 것이라는 국제적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TPP에 대한 아무런 공식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의 전망대로 서울에서 협상 참여 결정을 위한 ‘모멘텀’이 형성되는 게 분명해 보인다.

 한국은 TPP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복수의 경제동반자협정(EPA)과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일본을 비롯한 다른 이웃 국가들보다 경쟁력에서 이점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체 교역량의 3분의 1 정도가 이에 해당하는데 일본은 6분의 1 정도다. 서울의 통상·외교 분야 리더십은 더 많은 시장을 개방하고 미래 협상에서 지렛대 역할을 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TPP에 가입하면서 이런 이점은 사라지게 됐다. 일본이 TPP에 참여한 12개국과 동일 규정으로 단일시장 효과를 누릴 때 한국은 단지 양자 협정에 의한 효과만 얻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 수출업자들의 경쟁력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다.

호주와 다른 TPP 회원국들과 일련의 양자 협상을 시작한다는 최근 한국 정부 전략은 이러한 경쟁력 격차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모두가 결혼할 때 축하주나 마시는 처지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자유무역협정 시대에 일본이 잠시 신경 쓰지 못하는 동안 적극적으로 뛴 덕분에 엄청난 이점을 누려왔다. 하지만 지역이 고품격 다자간 협정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이점을 잃게 된다.

 TPP 참여는 향후 예상되는 C-K-J(중국-한국-일본) 통상대화에서도 한국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TPP가 수준 높은 규정을 마련하고, 중국이 이를 떠오르는 태평양 지역의 통합된 통상 틀로 여기면 이러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

 문제는 참여 시점이다. 협상의 80% 이상이 완료되고 실질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진 뒤에 박근혜정부가 참여하면 서울에 정치는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 (올해 가입 의사를 발표한) 일본은 늦었지만 외무성과 경제산업성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미 주도적인 협상국 위치에 올라섰다. 일본의 남은 과제는 자동차·환율 및 농업이다. 하지만 앞의 두 과제는 상징적일 뿐이며 집권 자민당은 농업 시장을 개방하고 개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TPP를 아베노믹스를 이루는 세 가지 화살, 즉 통화완화·재정확대·성장전략 중 성장을 위한 주요 자극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이 언제 TPP에 합류할지를 결정하면 미국과 한국의 국내 정치는 이를 조심스럽게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무역 협상은 항상 정치적 위험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마냥 시기를 기다리는 것에 따르는 경제적인 위험은, 협상에 지금 합류하는 것에 따르는 정치적 위험보다 훨씬 크다.

 서울의 시사평론가들은 한국이 TPP에 참여하면 중국과의 관계를 해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혀 고려해볼 가치가 없다. 이러한 논쟁은 한국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중국에 대한 과민증을 반영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베이징의 TPP에 대한 공식 반대 입장은 일본이 참여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국제무역이론을 더 많이 이해하는 경제고문을 지명하면서 상당히 사라졌다. 이 고문들은 다음과 같이 시 주석을 설득해 왔다. 즉 일본의 참여로 TPP는 이제 아시아의 유력 포럼으로 자리 잡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중국은 1990년대에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경제 개혁에 이용한 것처럼 TPP를 활용해야 한다. TPP에 대한 반대는 현재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난 6월의 서니랜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의 대표단은 마이클 프로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TPP에 대한 브리핑을 요청해 보고 받았다. 이후 중국은 한때 보였던 노골적인 반대 대신 TPP 참여로 인한 장기적 이익에 대한 조심스러운 관심을 보여 왔다.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의 TPP 참여를 환영한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동안, 워싱턴 정가는 교역 협상이 정치적인 요구에 부합한다고 인정하면서 각국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TPP는 4개 창립회원국(뉴질랜드·싱가포르·칠레·브루나이) 가운데 하나가 아닌 미국도 결국 참여시켰다. 자유무역 협상은 한국에 더 많은 경제적·외교적 역동성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아쉬울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