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개혁, 무리한 기소부터 막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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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기소됐던 고위공직자들이 잇따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유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때다.

 대법원 2부는 그제 부산저축은행에서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에게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2011년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에게서 “김 원장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 김 전 원장을 구속한 뒤 기소했다. 대법원 2부는 또 유동천 전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지난 4월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달 24일에는 김장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들 역시 저축은행 비리 수사 과정에서 기소됐다.

 이처럼 무죄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있는 건 “돈을 줬다”는 저축은행 관계자 진술에 일관성이 없거나 관련자 진술 등과 모순되는 등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 때문이다. 진술에만 의존하는 특수수사 관행이 심각한 맹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끼리 돈을 주고받은 경우에는 당사자 진술 외에 별도의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유죄의 심증이 간다고 해서 특정인 진술만 갖고 재판에 넘긴다면 누구든 억울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가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인 이유다.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이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기소해야 한다.

 특히 해당 인사 대부분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된 뒤 길게는 2년씩 재판에 묶여 사실상 경력이 단절됐다. 김 전 원장은 파면돼 복직 절차를 밟아야 하고, 이 전 청장은 직위해제된 상태다. 사회적 명예에 씻기 힘든 상처를 입은 데다 정규 코스를 다시 밟아가기도 쉽지 않다. 검찰의 기소권이 잘못 사용되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때는 항소나 상고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 전 청장의 경우 1, 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핵심 증인인 유동천 전 회장이 돈을 준 시점조차 제대로 특정하지 못하는 등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또다시 상고를 강행했다. 하급심 판단을 뒤집을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기계적인 항소·상고를 되풀이하는 것은 피고인을 괴롭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검찰 개혁이 수사의 독립이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수사권·기소권의 오용과 남용을 막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정치와 관련이 없는 공직자나 일반인들에겐 오히려 더 피부에 다가오는 문제다. 검찰이 수사의 밑그림에 진술을 꿰어맞추면 꼼짝 없이 유죄추정 원칙을 적용받아야 하는 현실이 이어지는 한 ‘검찰 공화국’의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