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받은 섬유협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미간의 섬유협상은 마침내 최후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정부는 지금까지 한미간 협상에 있어 미측 대표였던 주리크 특사를 다시 한국에 특파, 오는 10월1일까지 한국이 대미섬유류 수출제한에 관한 정부간 협정을 체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10월15일부터 일방적으로 수입제한조치를 취하겠다고 정식으로 통고해 왔다는 것이다.
지난 6월의 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뒤 정돈상태에 빠졌던 한·미간 섬유협상은 이로써 미측으로부터 일방적인 최후통첩을 받은 셈인데, 한국의 지수사정을 설득하여 섬유류 수입규제에 있어 하나의 특례를 인정해 주기를 바랐던 우리측 입장은 이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라 하겠다.
섬유류 수입제한 문제에 있어서의 미국정부측 결의가 이만저만 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동안의 협상을 통해서도 우리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때 자율규제는 물론 정부간 협상까지도 보이코트 하겠다던 업계측으로서도 최근에 와서는 결국 미측이 제시한 수입 억제선을 완화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누그러졌던 것으로 알고있다.
이 까닭에 우리는 이제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신을 무릅쓰고, 또 전통적인 한·미간의 우호관계도 고려할 여지없이 미국정부가 그 같은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데 대해 큰소리로 비난만 일삼는다 해서 사태의 타개를 위해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닉슨의 달러 방위공책이 우리 나라에 주는 영향이란, 실제적으로 주로 우리 나라 대미수출상품의 대종인 섬유류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통첩은 우리 나라 전체 상품의 대미수출 전망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이 아닐 수 없으며, 우리가 이러한 암담한 상황에서 탈출하는 길은 오직 근자 되풀이 강조되어 온 수출시장의 다변화 등 우리의 수입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 노력만 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것이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최종방침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 미국이 일본에 대하여 연간 3%의 섬유류 수입증가폭을 통고한 사실 등에 비추어 정부가 서울 회담에서 제시했던 향후 5년간 연 평균 20%선은 크게 후퇴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이 명백하다 할 것이며, 다만 당면한 협상의 여지는 미측의 제안으로 알려진 연 평균 8%선을 가능한 한 상향조정하도록 체미 중인 이상공 등을 통한 긴급교섭 외엔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앞으로 남은 섬유류협상에 있어서 정부측의 교섭성과에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이 문제를 놓고 지금까지 장기간 벌여온 정부당국의 교섭과정이나, 업계의 대책이 과연 최선의 것이었던가에 대해 스스로 깊은 성찰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냉엄한 국제경제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한편, 자국의 이익추구를 위해서는 타국의 딱한 사정 같은 것은 아예 돌아볼 수 없게된 것이 오늘날의 치열한 무역전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점 미국에 대해 너무 특혜적인 기대를 걸었던 우리 정부와 업계측의 안이했던 태도는 앞으로 철저히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수출정책은 상품구조의 변동에 신장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출산업의 기반을 확충해야 함은 물론, 세계적 보호무역의 경향에 능동적으로 대결해 나아갈 수 있는 자체역량을 배양하는 수밖엔 다른 도리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섬유류 대미 수출감소로 우리 경제가 입게될 치명적 영향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새로운 시장의 개척 등 관련업계에 끼칠 충격을 극소화시키는데 빈틈없는 사후대책을 세우기를 촉구하면서 내외의 중대한 시련에 직면한 수출선도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서 새로운 정책기조를 정립시켜야 할 시점으로 믿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