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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자금의 양과 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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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본격적인 공업화 계획에 편승, 각 산업의 선두주자로 군림하기 위해 은행 채나 외채, 심지어는 사채까지도 자본조달에 도움만 된다면 마구 끌어다 투자해왔던 기업들은 지금 불황의 여파를 가장 심하게 느끼고 있다.
한때 치부의 고속도로를 치닫던「차관업체」가 부실기업의 대명사처럼 전락하고 부채의 중압을 실감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전사태는 경쟁기업의 출현, 시장여건의 변화 등으로 경영이 더 어려워진데다 차 관등의 차입자본상환부담이 늘어나고 신규자금은 조달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은의 69년도 기업경영분석에 의하면 제조업 총 자본 중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27%에 불과하고 타인자본의 비율이 73%에 달한다.
이는 일본기업의 자기자본 23대 지인 자본77, 미국기업의 자기자금 57대 타인자본 43과 비교하여 일본기업보다는 자기자본 비율이 약간 높고 미국기업보다는 훨씬 낮은 것이다.
어느 나라의 기업이든 타인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기업이 없고, 자기 자본으로만 경영을 한다면 기업성장은 물론 그 나라 경제발전은 몹시 더딜 수밖에 없다.
다만 조달방법, 양적인 균형, 자금의 질, 다시 말해서 차입조건 등이 문제된다.
우리 나라 기업은 내자의 경우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해 직접금융보다는 간접 금 밀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외자는 국내자본의 절대량 부족에다 기술의 낙후 등으로 외국의 사양산업, 낙후한 시설 등이 그대로 이식되는 현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자본조달에서 직접금융보다 간접금융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은 직접금융이 이익을 전제로 한 배당과 상환이 약속된 채무가 아니나 간접금융은 기업이윤에 관계없이 약속된 이자를 지불해야하고 일정기일 후에는 상환책임을 져야한다는 점에서 불황에 대한 내구력을 약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이 불황의 여파로 부실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원인은 바로 간접금융의 부담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금의 양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수요와 견주어 절대공급량이 균형이냐 아니냐의 문제 뿐 아니라 시설자금과 운전자금의 비율과 수요의 충족을 어떤 형태로 이루었느냐에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70년 말 현재 일반은행의 총대출금 4천4백17억 원 중 시설자금의 비중은 2·6%에 불과한 1백17억 원, 산은 등 특수은행의 총대출금 2천6백50억 원 중 시설자금의 비중은 7백19억6천만원인 27%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분류는 비 시설자금의 상당한 부분이 소비금융이란 점과 자금의 통제가 은행창구에서의 1차 통제가 가능할 뿐 방출된 자금을 끝까지 추적할 수 없다는 점등으로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30억「달러」가량의 확정차관 중 내자조달을 위한 현금 및 물자차관을 뺀 80%이상의 차관이 시설목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자금투입에 있어서는 운영보다 시설자금의 비중이 더 높아지고 결과적으로는 운영자금의 부족현상이 심화되어 사채의존에까지 확대된다.
착실하게 성장을 보이던 천우사계의 대성목재 등이 사채부담에 허덕인 끝에 부실기업으로 정비된「케이스」나, 풍한 방적이 부도를 낸 즉시 사채권자들이 달려들어 끝내는 법정관리로 넘어간 것 등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개별업체별로는 규모미달로 장기적으로는 원가부담의 증가로 인해 운영자금의 수요가 비례적으로 증가하는 점이라든가 낙후한 시설, 중고시설, 시설개체부진 등에 의한 생산성의 저하가 자금수요를 증가시켜 자금난을 겪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자금의 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 나라의 타인자본의존비율이 70%이상으로 일본과 비슷하지만 조건 면에서 훨씬 불리한 여건에 있다.
71년 1월 현재 일본의 일반대출금리는 연9·5%이나 우리는 연 24%로 배가 넘는다.
또한 70년 9월 현재 일반은행의 금리별 대출구성은 연10%이하 조건이 9·3%, 10∼20% 조건이 7·3%, 20∼24% 조건이 60·2%, 24∼26% 조건이 13·7%, 연 36·5%의 연체가 9·5%이다.
이러한 평면적 대비에 공장건설비「로스」, 자금조달과정의 부대비용, 시설과잉 등에서 빚어지는 자금의 비효율 등 기업자금 구성의 모순을 가산하면 엄청난 부담의 증가를 나타낼 것이다.
공장건설과정에서의 자금「로스」는 부동산투자 등의 자금유용,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아 건설기간이 연기되는 경우의「인플레」로 인한 추가자금부담 등을 들 수 있고 시설과잉에서 빚어지는 자금의 비효율은 동일 업종의 경쟁적인 시설증가로 제품수요와 괴리되어 투자자금의 회수부진과 추가자금의 누진적 수요증가를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금조달의 부대비용은 국내금융이건 차관이건「커미션」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사채까치도 중개수수료가 붙는 게 관례로 돼 있다.
이런 여건 밑에서 기업들이 지금까지 성장해온 것은 경쟁기업이 적어 시장조건이 좋은데 있었다.
기업의 부담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이윤과 관련해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 내외경쟁이 점점 격화되고 시장정세가 악화하여 불황은 심화되고 있다.
불황에 따른 외상판매기간의 연장, 출혈매출로 인한 자본잠식 등이 자금수요를 점점 증가하고있는 가운데 금융지원은 선별금융이 아닌 구제금융으로 일관하고 있어 재무구조가 전반적으로 악화하고 자금난이 심해지고 있다.
결국 이제는 기업자신의 자금조달과 운영방법뿐 아니라 정부지원방식도 지금까지의 형태에서 어차피 전환돼야할 단계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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