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동북 100m서 또 하나의 왕릉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백제문화의 보고인 무령왕릉이 발견된 충남 공주읍 송산리 고분군(사적 13호)속에서 또 다른 미 발굴왕릉이 발견되었다.
문화재관리국은 무령왕릉의 발굴에 이어 송산 리 고분군이 있는 산을 면밀히 답사, l·2·3호 고분 바로 뒤의 커다란 봉우리가 고분의 봉 분임을 확인하고 최근 과학기술처(문화재위원 김유선 박사「팀」)에 의뢰, 과학기재를 동원해 고분 내 유물의 유무까지 조사했다.
관리국은 특히 새로 확인된 고분이 무령왕릉의 산줄기 위쪽에 있으며 그 규모가 또한 거대하다는 점에서 무령왕의 부왕인 제24대 동성왕릉이 아닐까 예의 주목하고 있다. 백제가 공주로 도읍을 옮긴지 5년, 3대째로 즉위한 동성왕은 재위 22년(서기 479∼500년) 동안에 국력을 회복하고 중국과의 교역을 활발히 했으며 말년엔 사치를 누린 왕이다. 그래서 그 고분이 동성왕릉이라고만 한다면 무령왕릉과 같은 전돌 축조의 구조며 유물 역시 상당한 것이 묻혀 있으리라 내다보고 있다.
무령왕릉의 동북 1백여m, 산줄기의 거의 정 상부에 위치한 이 고분은 언뜻 봉우리와 같이 보인다. 나무가 뒤덮여 있을 때에는 그 뒤에 연한 정 봉이 보이지 않아 봉 분으로 가려보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1935년 이 일대의 고분군을 문화재로 지정한 이래 그냥 간과돼 온 것이다. 그러나 몇 그루 소목만이 듬성한 지금에는 직경 15m쯤의 봉토 윤곽이 육안으로 확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금강과 공산 성 및 공주시가지가 환히 내려다 뵈는 정상 부의 이 고분은 무령왕릉과 매우 유사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고고학 계는 보고 있다. 즉 무령왕릉이 5호·6호 고분을 휘하에 거느리듯 앞에 두고 삼각정점을 이루었듯이, 이 고분은 1·2·3호 고분의 뒤쪽에 다가서서 정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령왕릉 앞의 5호 고분은 일제 때 일인「가루베」가 도굴했는데, 처음 문을 열었음에도, 텅 비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왕릉서 나온 지석의 글귀로 유추하건대 왕비와 합장하기까지 적어도 5년 동안 5호 고분에 임시로 장사지냈다가 뒤에 유물까지 함께 본분으로 옮긴 것인지도 모른다고 무령왕릉조사단의 윤무병 학예 관(국 박 부 관장)은 말하면서『이 당시의 백제 장 제가 중국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가장했던 현실을 빈 채로 둔 예는 경남 고령고분 발굴에서도 밝혀졌는데 이번에 그 까닭이 해명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로 확인된 고분 앞 3기의 고분도 그런 성격의 것으로 연관시켜 풀이되고 있다. 그중 1호 고분은 이미 도굴된 채의 빈 현실을 정리해 철문을 설치해 놨고, 다른 2기는 내부를 정식 발굴 조사한바 없는데, 봉 분의 규모가 뒷 것에 비교되지 않는다.
이 고분의 봉토 마루는 도굴범에 의해 조금 파헤쳐졌으나 주위에 전의출토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현실 천장 까 진 못 미친 도굴 미수로 보고 있다.
허연문 화재관리국장은『금년에는 무령왕릉 발굴조사 때문에 예산이 없어서 내년도의 대대적인 발굴사업으로 연기했다』고 말하고, 무령왕릉과 같이 많은 명문이 나와 백제 사 연구에 커다란 개가를 올릴 것을 기대했다.
관리국은 이밖에도 또 무령왕릉 앞쪽언덕의 고분2기에 대해서도 정리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공주=이종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