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의 집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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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율리시즈」는 「페넬로페」라는 절세의 미인과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아기까지 낳아서 새로운 경지의 즐거움을 맛보려는데 「트로이」전쟁이 일어난다.
「율리시즈」는 용약, 출진한다. 20년의 세월이 흐른다. 「페넬로페」는 정절을 지키며 남편이 개선하는 날만을 기다린다. 하루가 천추같다.
그러나 「페넬로페」의 그 눈부신 미모에 마음이 부푼 구혼자들은 저마다 「율리시즈」의 부음을 알려준다. 단념하고 어서 재혼하자는 것이다. 「페넬로페」는 생각다못해 일책을 내놓는다. 『연로한 시아버지 「레아르테스」가 돌아가실 때 사용할 장의용 천막을 지금 짜고 있는데 이것이 완성되면 그 구혼을 받아들이겠다』-. 구혼자는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밤낮없이 「페넬로페」는 형형색색의 실을 모아 그 천막을 짜고있다. 그러나 구혼자가 찾아올 무렵이면 짜놓은 천의 실을 모두 풀어버린다. 그러고는 『보다시피 좀더 기다려야겠어요』라고 말한다. 다시금 색실들을 모아 천을 짠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이면 무지개가 사라지듯 그것을 모두 풀어버리곤 한다. 3년이 이렇게 지나간다.
어느 날 남편 「율리시즈」는 정말 이겨서 돌아온다. 구혼자들은 물론 혼비백산해 버린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고대희랍의 서사시인 「호머」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고사이다. 이것은 아주 상징적인 우화라고 생각된다. 천을 짜고(직) 풀고 하는 것은 건설과 파괴의 「리듬」이다.
평화와 전쟁의 「리듬」도 그렇다. 철학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리듬」이라고 해도 좋다.
미국의 철학자 「윌·듀란트」의 근저 『역사의 교훈』을 보면, 인류의 면면한 역사는 언제나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기록된 역사는 3421년이다. 그 동안 평화를 찾은 해는 2백68년에 지나지 않는다』-. 1년을 사이에 두고 평균15년은 전쟁이 계속되어 온 셈이다.
이 기록을 보면 인류는 얼마나 우둔한 「전쟁동물」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암흑 속에도 때때로는 평화의 햇살이 스며들었다. 바로 역사가 발전되고, 또 끝나지 않은 것은 그런 평화에의 의지 때문이다. 평화에의 충동은 그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생명감을 불어 넣어준다.
「페넬로페」가 23년이나 순정을 지킬 수 있었던 그 용단은 평화에의 집념이 없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평화는 곧 민족의 의지요, 생명력이다.
15일은 8·15 26주년 「광복」은 왔지만 오늘 이날까지 누구도 그 다음의 평화를 구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참고 견디며 오늘을 살아온 것은 그 평화에의 집념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우리는 평화로의 발돋움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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