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 10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나라가 반쪽으로 쪼개지기라도 했는지 사생결단식 정쟁이 거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인사 카드는 한 장 한 장 살펴보면 합리적 선택을 한 것 같은데 전체 그림에선 심각한 지역편중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편중 인사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분열된 정치를 치유하기도 어렵다.
박 대통령은 검찰총장 후보에 경남 사천 출신인 김진태씨, 감사원장 후보에 마산 출신인 황찬현씨를 지명함으로써 사정라인 두 곳의 빈자리를 모두 이른바 PK(부산·경남) 사람으로 채웠다. 전문성과 국정철학을 고려해 사람을 선택하다 보면 사흘 만에 이뤄진 연속 인사라도 우연히 같은 지역 출신이 나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박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되풀이한 이 같은 인사가 누적되면서 이 정부에서 ‘탕평의 정신’이 실종됐다는 비판만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해 정홍원 국무총리·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5개 헌법기관 중 3부 요인이 PK 출신인 데다 청와대의 김기춘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 등 권력운용의 핵심 요직이 모두 PK 동향 인사들로 짜여 있다. 청와대는 “지역·학연을 고려하지 않고 적임자를 찾다 보니 생긴 결과”라고 해명하고 있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그 적임자들은 왜 늘 PK에 몰려 있는가.
탕평은 분열이 깊은 곳에서 통치자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정치가 특정 세력들의 정파적 이익 때문에 공동의 국익을 추구하는 게 불가능해졌을 때 통치자가 취하는 ‘인사의 예술’이 탕평책이다. 대선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이 “저는 모든 공직에서 대탕평 인사를 하겠다. 박근혜정부는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 100% 대한민국 정권이 될 것이다”(2012년 10월 23일)라고 말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집권 뒤 인사에선 전문성과 국정철학만 중시했지 탕평의 정신은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거기다 청와대 2기 체제로 김기춘 비서실장이 등장하면서 탕평의 가치는 자취마저 감추었다. 박 대통령이 초심을 되찾고 인사위원장이기도 한 김 실장에게 탕평의 가치를 각별히 주문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