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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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닉슨」대통령은 15일 미국의 3대 방송회사에 시간을 좀 내달라고 요청했다. 현지 시간으로 15일 밤 10시30분. 기자들의 억측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마 중동에 대한 무기금수 조처를 해제하는 것일 거야.』-『노, 노, 「파리」평화회담에 결정적인 계기가 온 것 아냐?』
사실 이런 기사들이 단속적으로 전세계에 타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시간에 「텔리타이프」의 「카피」엔 천만뜻밖의 기사가 들어오고 있었다.

(「닉슨」대통령은 중국본토를 방문할 것이라고 목요일 발표했다.)
세계는 이 한 구절 외신을 받고 깜짝 놀랐다. 우선 「워싱턴」주재 자유중국대사 「제임즈·C·H·셴」은 『내 귀를 믿을 수 없소!』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로 말했다. 「닉슨」의 보좌관인 「헨리·키신저」박사는 지난 8일 서「파키스탄」에 도착했다. 그 무렵, 외신에 따르면 「키신저」는 9일 「라발핀디」에서 80km 떨어진 산장에서 「야햐·칸」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스케즐」이 취소되었다. 이유는 「키신저」가 복통을 일으켜 요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기자들과 「키신저」의 접촉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복통』을 앓는 동안 그는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북평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미국외교사상 이처럼 철저하게 비밀이 지켜진 예는 드물다고 한다. 어쩌면 원자탄개발의 비밀이후 처음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미국외교방식은 『「닉슨」외교』라기 보다는 『「키신저」외교』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백악관지하실엔 이른바 「K·커맨드」(「키신저」사령부)가 있다. 여기엔 1백 수십 명의 요원들이 24시간 귀에 「리시버」를 꽂고 있다. 이들은 CIA도, 「펜터건」도 아닌 바로 「키신저」자신의 부하들이다.
이들은 미국의 어떤 공식적인 정보 시스템보다 앞서 전세계의 정보를 수집한다. 「키신저」는 거의 단독으로 이 정보를 분석하여 「닉슨」에게, 또 더러는 CIA나 국무성에 나누어준다.
「키신저」가 이혼을 한 내밀의 이유는 백악관에 전력투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완벽한 정치동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따라서 백악관도 「키신저」의 사적인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 「닉슨」이 받는 보고서 중 60%는 「키신저」 의 것이라고 한다. 「키신저」의 지하 사무실엔 세계의 안위를 좌우하는 「톱·시크리트」(극비) 문서가 산적해 있다. 오죽하면 「사이밍턴」상원의원이 「닉슨」을 보고 「키신저」의 포로 같다』고 했겠는가. 바로 그가 중공의 만리장성을 넘어 주은래와 회담하고 돌아왔다. 이제 그의 지하사령부에선 또 무슨 전략이 꾸며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세계의 이목은 지금 그 지하외교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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