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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재검토 아쉬운 인력수출정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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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력수출-. 외국에 품팔이 나가는 것을 멋진 「뉘앙스」로 바꿔놓은 신어이다. 그리고 이 인력수출 「케이스」로 나가는 노동자들에게는 「외화획득의 첨병」이라든가 「땀흘리는 한국인」 등 최상의 월계관이 씌워졌다. 이역만리의 하늘아래서 숱한 난관을 싸워 이겨야 하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처럼 고생하고 땀흘리는 해외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과연 정당한 대우와 적절한 보호를 받고있는 것일까. 적어도 구·아 지역에 관한 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당국의 무성의가 빚은 폐해와 손실은 열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인력수출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광부·간호원·의사들 가운데 우선 숫적으로 제일 많은 간호원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금이라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양로보험금 문제가 있다. 이미 l천여만「마르크」의 돈을 놓쳐버렸지만 서독측이 오는 76년까지 1만7천명의 한국간호원을 더 받아들일 계획이므로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 그 「놓쳐버린 과정」을 지적해 두려는 것이다.
우리 간호원들은 서독국내법에 따라서 매달 자기봉급의 17%씩을 의무적으로 양로보험에 불입하게 된다. 그런데 이 보험료의 불입은 서독연방보험회사나 그 밖의 개인보험회사 중 간호원이 자유로 선택하는 곳에 할 수 있게 되어있다. 다만 개인 보험회사에 불입하고 싶은 사람은 『서독에 도착 후 3개월 이내』에 연방보험회사 앞으로 「면제청원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바로 이 「3개월 이내」라는 규정이 덫인 것이다. 낯선 땅에 와서 게다가 언어마저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3개월 이내에 보험금문제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주위의 귀띔 없이는 불가능하기마련. 그리고 이 선택을 놓쳐버린 댓가로 간호원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게되는 것이다.
우리 간호원들의 평균봉급인 8백「마르크」를 기준으로 두개의 보험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보자. 매달 불입금 1백36「마르크」를 5년(계약기간)불입한 총액은 8천1백16마르크. 이 경우 연방보험에 든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2년이 지나야 자기가 부은 돈의 50%만을 찾게된다. 즉 4천58「마르크」를 타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보험에 든 사람은 2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전불입액의 92% 7천4백67「마르크」를 타게된다. 따라서 개인보험에 든 사람은 2년간의 이자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3천4백「마르크」(한화30만원)를 덕본다는 계산이다.
이것을 기초로 우리 간호원 전체의 손해총액을 계산해보면 실로 엄청난 결과가 나온다. 현재의 간호원 3천9백18명 가운데 68년 이전에 온 사람과, (개인보험가입은 68년1월1일 이후 허락됨) 운좋게 개인보험에 가입한 9백여명의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은 손실은 1천만「마르크」를 훨씬 상회하며 이 같은 손실은 당국의 계몽부족에서 기인한다.
이와 같은 손실을 『당국의 계몽부족 때문』이라고 규정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서「베를린」의 「아그네스·박」수녀(28·속명 박정화)가 이뤄놓은 공적이 그 뚜렷한 반증이 되기 때문이다. 서「베를린」에 있는 8백여명의 간호원 중 68년 이후에 온 사람치고 연방보험에 든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한 명의 수녀가 수백명의 간호원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당국이 조금만 성의를 기울였더라도 하는 아쉬움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간호원들에 대해서 두 번째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그들의 자격문제이다. 서독에서 간호원학교를 나와 자격증을 받은 사람은 한국에서 그 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등이 모두 인정해주는 자격을 유독 본국만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이 점이 간호원들의 귀국기피증과 깊은 함수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비춰봐서도 이 문제는 깊이 재고되어야할 것이다.
약1천5백여명이 진출, 간호원 다음으로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광부들의 경우도 당국의 무성의는 깊은 주름살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주름살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노동조건 중 계약기간에 관한 문제였다.
현재 한국인 광부들의 계약기간은 모두 3년. 바꿔 말하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는 한 『3년 동안은 의무적으로 광부생활을 해야한다』는 조건이다.
그러나 40여만명의 노동자를 수출하고 있는 「유고」「터키」「이탈리아」는 물론 도대체 서독에 광부를 보내고있는 나라 가운데 『계약기간 3년』을 의무조항으로 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모두가 1년인 것이다. 「터기」의 경우는 3년을 원칙적으로 하되 『1년 이후에는 마음대로 해약할 수 있다』고 규정, 사실상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이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서독에서 광부만큼 『위험하고 돈벌이 안되는』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호텔」의 「벨·보이」, 지하철공사장의 막일꾼 등 기자가 만났던 최하층의 노동자들도 광부의 벌이보다는 훨씬 나았던 것이다.
따라서 서독측이 해외노동자들에게 광부생활 1년을 의무화한 것은 좋은 자리에서 돈벌이를 하도록 허락해주는 반대급부적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1년동안 애써주면 나머지 4년 (서독은 해외노동자들의 국내거주는 5년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동안 급료가 높은 직장에서 일하도록 해준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인 광부들만은『3년 동안 수고하도록』한국당국에 의해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와 같은 불평 등을 시정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없없을 뿐만 아니라 현지 대사관에서는 3년 계약기간을 마친 광부가 다른 직장으로 바꿔서 계속 체류하는 것을 적극 말리고있는 형편이었다.
「우간다」에 파견된 의사들의 경우는 광부·간호원과 그 성격이 무척 다르지만 「인력수출」이란 점에서는 단 하나의 차이도 없었다. 바꿔 말하면 국내에서 기술원조처럼 선전되어 있는 것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착각이었다는 얘기이다.
우리정부에서 쌀 한 톨 보태주지 않는 형편에 무슨 근거로 원조 운운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우간다」정부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당연한 결과지만 의사들 역시 자신을 「우간다」의 고용원으로 생각하고있었다.
이들의 소망은 우리정부가 한 달에 단돈 1천원씩이라도 지급해 주는 것. 그렇게 하면 「우간다」에 와있는 다른 외국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기술원조의의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겠다는 것이다. [나이로비(케냐)=홍사덕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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