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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현실 그려 양극화 고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경제적인 문제가 한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서 등장하고 있는 오늘,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경제일변도의 사회에서 야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배금주의라든지 상업주의의 만능화, 정신문화의 침체, 삶의 본질에 대한 외면, 도덕적인 타락 등-의 「도전」으로부터 이 땅을 보호하고, 물질적인 부와 함께 정신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펜·클럽」작가기금으로 여러 권의 창작집이 나왔다는 것은 그 현장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인 사실인 것 같다.
창작집의 질적인 면은 아직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이 달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창작기금이 끊어졌다는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내외의 여러 요인으로 침체해 있는 한국문단에 또 하나의 암운을 던져주는 것 같다.
황석영씨의 『줄자』(월간중앙)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한 선량한 교사와 벼락부자가 된 회사의 중역이 맞부딪치는 이야기다.
이 두 인물은 우리 사회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두 계층을 대변하고있다. 교사는 시골의 소농출신으로 서울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여학교의 선생을 지내면서 극심한 가난을 극복하며 이제 겨우 <자기집>을 갖게되었고, 전무는 가짜 화장품장사를 해서 진짜 화장품회사를 경영하게 되었다. 교사는 타인에게 간섭을 하지 않는 반면에 간섭을 받지 않고 사는 착한 소시민의 대표적인 「케이스」고, 전무는 남을 속이면서 부자가 된 소시민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두 인물은 우리사회의 모순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전자는 대학을 나온 지성을 사회 속에 투입하지 못하는 소극적 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고, 후자는 지성이나 의식 없이 적극적인 배금주의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이 두 계층이 부딪쳤을 때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당연하다」는 관념이 사회적 통념으로 습관화되었을 때 오는「도덕적 사회」의 소멸에 있는 것이다. 작가가 두 인물가운데 교사의 편에 서게 된 것은 그의 무능과 안일주의 때문이 아니라, <전무>의 부정적인 요소가 사회에 미치는 해독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인물은 우리사회의 두 가지 모순을 대변한 점에서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윤정규씨의 『장삼이사전』(신동아)과 강용준씨의 『아버지』는 아버지-아들 2대를 다루고 있다. 윤씨의 그것은 농촌에서 부를 누린 아버지와 도시로 나가려다 실패한 아들의 이야기지만, 아들의 도시지향은 농촌적 삶의 허구성의 인식으로부터 야기되고 있다. 그래서 농촌은 피폐해 있다든가, 시골 사람이 도시 사람의 간계에 빠지게 된다든가 하는 도식적인 현실 인식을 근간으로 삼게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도식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농촌이나 도시가 현실로서의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 본질적인 인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일이다.
아버지대가 이룩한 부를 아들대가 보존하지 못한 사실은 일제시대가 오늘날보다 낫다는 것으로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있는 현실에서 삶이 어떤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인 것 같다. 『사족기행』과 『오욕의 강물』에서 보여주었던 씨의 의욕을 기대하고 싶다.
강씨의 『아버지』는 <중등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평범한 촌부로 활량끼도 조금 곁들인 하나의 사람 좋은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몰락해가는 한 중농의 완고한 후예에 않았던 것이며, 이 시대가 낳은 수많은 희생자 중의 하나에 불과하였다>는 고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회고적 감상을 곁들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아버지가 살았던 고민을 작가가 다시 괴로워해야 하는 정직한 자기고백인 것이다..
다난한 시대를 살고 간 아버지, 그리고 그 이상으로 다난한 삶을 경험한 「나」-이 두 삶의 동질성 속에서 「나」의 참 모습을 고백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두 세대의 비극성과 한 세대의 의식을 감지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이 사담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김문수씨의 『증묘』(월간문학)는 어렸을 때 삼촌의 죽음을 가져오게 했던 주인공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죽음의 보상을 받는 이야기다. 「고양이」「숙모」「그녀」라는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받는 보상은 저주받은 인간의 그것이면서도 작자의 미의식에 의해「죽음의 미학」으로 승화되고 있다. 『미로학습』을 전후로 관심의 변화를 보여주었던 이 작가가 여기에서 또다시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프로이트」적인 세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싶다. [김치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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