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최초로 드러난 백제의 현장 무녕왕 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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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마」라는 이름을 가진 무녕왕은 백제 동성왕의 둘째아들이다. 동성왕은 신라부인과 결혼한 사람인데 무령왕이 그 신라부인의 소생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서동요』로 잘 알려진 서동은 일반적으로 백제 무왕으로 알려져 있지만(삼국유사) 실은 동성왕이다.
동성왕은 「모대」 또는 「말다」왕으로도 불렸는데 이것은 서동의 이름 「맛동」과 발음상 상당히 비슷한 것이며, 무왕 때가 신라와 원수처럼 싸운 시기인데 비해 동성왕 때는 『삼국사기』기록처럼 신라왕녀를 비로 삼을 만큼 교통하고 있었다.
신라부인도 실은 「선화공주」가 아니고 이찬 비지부의 딸인데 그 원이름이 「선화」인지는 모른다.
익산 미륵사탑은 지금도 서동이 지은 절로 돼있는데 이것은 동성왕이 일으킨 것이며 낙성은 무녕왕이 이룩한것 같다.
이곳에 있는 유명한 쌍총은 동성왕능과 신라부인의 무덤으로 해석되는데 일제 때 발굴에는 관만 나왔다. 그 관은 마구리를 금정을 사용했는데 이번에 나온 관이 어떻게 됐는지 비교가 될 것이다.
한편 『백제신찬』을 인용한 『일본서기』에는 무녕왕이 말다왕의 아들이 아니라 곤지왕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어떻든 무녕왕은 사기에서 한강지역을 회복함으로써 백제중흥을 이룩한 왕으로 돼있는데 이번에 나온 지석의 기록이 어떻게 기록됐는지 궁금하다. [이병도(학술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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