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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항변 인술파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울의대부속병원을 비롯한 전국 각 국립대학병원에서는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인턴」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국립의료원에서 시작된 의료분규는 곧 서울의대·부산의대·경북의대·전남의대·서울치대 등의 부속병원으로 파급되었고, 지난 3일에는 이들 부속병원의 「레지던트」대표들이 공동성명을 발표, 「인턴」들의 요구를 전폭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국이 이에 대해 이렇다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자 4개 국립대학부속병원 「레지던트」 4백여명은 7일부터 48시간 시한부 파업에 돌입하여 의료분규는 더욱 확대되었다.
이 의료분규의 밑바탕에는 사실 지금 시행되고있는 수련의제도 자체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이 짙게 깔려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수련의라는 말이 풍기는 어감 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나 일반인들, 심지어는 행정당국의 정책입안자들까지도 「인턴」·「레지던트」를 예비의사로 취급하기 일쑤여서 의사들의 신경을 더욱 거슬리는 것 같다.
이처럼 「인턴」·「레지던트」를 마치 의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고있는 사람처럼 오해하기 때문에 당국이 이들을 도제취급하고 있다고 파업 「인턴」들은 비난하고 있다. 현재시행중인 우리 나라 의료제도는 옛과2년, 본과4년 모두 6년 동안의 의대과정을 마치고 국가가 실시하는 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하면 실제로 개업할 수 있는 의사자격을 부여하고있다.
일반의 중 전문의가 되고싶은 의사는 1년 동안의「 인턴」과정과 4년 동안의 「레지던트」과정을 밟은 뒤 전문의자격시험을 치러야한다.
그러므로 「인턴」「레지던트」과정이 예비의사로서 의사가 되기위해 수련하는 과정이 아니라 보다 전문적인 의학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수련의들의 입장을 우선 행정당국이 충분히, 이해해야할 것이라고 의료계는 지적하고있다.
특히 「인턴」 파업문제에 언급해서 이경호 보사부장관이 식모에 비유해서 발언한 것이 의료인들의 격분을 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는 아마도 수련의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빚어진 것 같다.
「인턴」 「레지던트」의 보수에 대해서도 수련의들은 「인턴」을 3급에서 4호봉으로, 4년차 「레지던트」를 3급갑으로 각각 직위 및 보수규정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있으나 이에 대해 당국은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국이 이처럼 난색을 표시하는데는 물론 『재정상 어렵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저변에는 수련을 받는 훈련생이 오히려 충분한 보수를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들이 깔려있는 것 같다.
현재 국·공립병원의 경우 「인턴」은 겨우 1만9천원, 「레지던트」는 2∼3만원의 봉급을 받고 있다. 이것도 사실은 작년 파업소동의 결과로 4∼6천원씩 오른 것이다. 이와 같은 봉급기준은 사립병원에 비하면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례로 사립병원인 성모병원은 「인턴」에게 3만원, 그리고 「레지던트」에게는 3만8천원에서 4만7천원까지 봉급을 주고 있으며 연2백%의 「보너스」도 지급하고 있다.
또 「세브란스」병원이나 고려병원 등도 3만∼5만2천원의 봉급에 연2백3백%의 「보너스」가 지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국·공립병원의 수련의들은 크게 불만을 품고 있다.
이와 같이 사립병원의 수련의들과의 대우격차나 이들보다 2년 짧은 교육과정을 마치고도 3급을∼3급갑의 처우를 받고 있는 사법연수생의 경우를 비교해서 수련의들의 자격과 대우문제를 따져볼 때 이들의 주장은 이유 있는 항변으로 보여진다.
긴 면학과 어려운 국가시험을 「패스」해서 가까스로 의사가 되는 이들에게 월봉을 겨우 2만원밖에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극히 불합리하다는 것이 의료인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파업중인 「인턴」과 「레지던트」의 대표들은 한결같이 인술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아래 지금 수련의들은 생활인으로서의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고있는 실정이라고 호소하고, 만약 자기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 경우엔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편 의료계 일부의 인사들은 「인턴」·「레지던트」를 수련의라고 호칭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있다.
애당초 수련의라는 말은 일본사람들이 번역해 옮긴 것으로 수련의라는 말 자체를 고치라는 의견은 벌써부터 나왔었다.
여하튼 의료분규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막고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행정당국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파악과 성의 있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지난번 국립의료원의 사태에서 보여준 징집연기 특혜의 박탈과 같은 위헌적이고 보복적인 해결방식은 지양되어야할 것이라고 의료계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있다. [김영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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