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실세화의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28일을 기해 환율을 단숨에 12·98%나 올려 외국환은행의 대 고객 매입율을「달러」당 3백 70원 매도율을, 3백 71원 60전으로 고시했다.
그간 IMF(국제통화기금)협의단 측과의 협의를 끝낸 뒤 정부당국은 환율실세화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으나 물가상승추세를 감안하여 적어도 연말까지는 점진적으로 상향 조작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던 것인데, 바로 그 며칠 후에 돌연 이 같은 환율의 대폭인상을 단행함으로써 경제계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충격을 주었다. 이와 아울러 정부는 예금 2.4%, 대출 2% 등 국내 여수신 금리 폭 인하도 동시에 단행하는 한편, 중장기 대출과 그 기한에 따라 금리의 차등을 두는 「텀·론」제를 신설키로 한 것이다.
「환율의 실세화」라는 명제를 놓고 볼 때, 이번에 결정된 「달러」당 3백 70원이란 수준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국내물가구조에 일대변동을 각오하면서 까지 환율의 급격한 인상이 불가피 했던 경제적 여건과 절박성에 대해서는 일단 수긍이 가지 않는 바 아니었으며, 때문에 이번 조치의 정책상 방향만은 대체로 옳은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과 금융 양 부문에 대한 이번의 조치에서 재무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 책 결정의 근저에는 근본적인 두 가지 문제점이 상존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는 IMF측의 기술적인 권고 내용이 어떻든 간에 환율의 실세화를 표방하는 현재의 정책 기조 상, 앞으로도 환율수준의 유지에 대한 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채 남아있으며, 이 때문에 일단 환율이 인상된 선에서 국내가격의 재조정이 진행되고, 또 그럼으로써 비록 단기적이나마 가격수준을 안정시킨 다음까지도 물가문제의 불안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도에 따르면 환율을 다시 인상하여 「달러」당 4백 원 선까지 올리게 될 것이라는 설도 있어, 이것이 불확실한 환율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환율인상과 병행하여 금리를 인하한 조치이다. 이번 환율인상에 따라 차관기업의 상환부담증가는 내년 3월까지만 해도 65억 원, 총체적으로는 외채 25억「달러」에 대한 약 1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러한 상환부담의 증가를 덜어주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또 기한이 도래한 분에 대해서는 일반금융을 지원하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차관기업의 상환부담의 증가를 걱정한 나머지 환율인상에 대처하는 물가 및 경제안정대책의 중요한 과제를 도외시하고, 도리어 「인플레」앙진을 부채질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너무 조급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환율인상과 금리인하에 따른 관련정책의 보완이나 재정비작업에 대해서는, 정부로서도 긴축재정과 금융긴축의 계속 강화, 비축물자의 방출을 비롯한 광범위한 조치를 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것은 환율인상을 핑계로 삼은 주요공산품 가격의 연쇄적인 인상 압력을 어떻게 적정하게 다루어 소비자보호에 역점을 둔 가격정책을 펴나가느냐에 있을 것이다.
이번 환율인상의 효과를 예측함에 있어 그것이 수출의 비례적인 증대, 수입의 억제 등 국제수지 개선에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하게 되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만일 정부가 국내 물가의 재조정 면에서 실패한다면 평가절하에 따른 수출「인센티브」의 효과는 금시에라도 상살 될 가능성이 짙은 정세라고 봐야하겠으며 때문에 사후대책의 주요 성이 더욱 강조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차제에 우리 나라 외환제도상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다시 한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65년 5월부터 실시해온 변동환율제는 69년 12월에도 이번과 성격이 동일한 급격한 대폭인상조치를 취했던 것이며, 내외의 끊임없는 실세화 압력아래서 유명무실한 「변동」을 지속해 옴으로써 사실상 변동환율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결과는 환율전망의 불안정 속에서 항상 가격예측이 불확실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여기에 이번과 같은 충격이 되풀이됨을 전제로 한다면 차라리 고정환율제를 시행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반성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