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이집트의 종교 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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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로 도심 황금섬에 나란히 자리한 이슬람 성원과 기독교 교회(오른쪽).

"이곳에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에 갈등이 전혀 없어요."

카이로 시내를 동서로 가르며 흐르는 나일강 위에 위치한 작은 섬 주민들은 이같이 입을 모은다. 나일강 양측으로 들어선 고층건물들과는 대조적인 이 섬의 이름은 '황금'이다. 저녁노을이 들면 섬 주변에 무성히 자라고 있는 갈대들이 황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렇게 붙여졌다.

주민 1000여 명 남짓한 이 작은 섬에는 교회와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20여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 있어 행인들을 발길을 붙잡는다. 수백 년 전부터 있었던 작은 간이 이슬람 예배당이 100여 년 전 현재의 사원으로 신축했다. 성 조지 마르 기르기스 교회는 이보다 늦은 1963년 이곳에 건설됐다. 교회가 세워질 당시 반대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섬마을 촌장인 무하마드 알리(50)는 "이웃이 집을 짓는데 반대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알리 촌장은 "나의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 충돌이 있었다는 얘기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웃의 냄비가 몇 개인지도 서로 아는 처지에 신앙 때문에 싸울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마르 기르기스 교회의 관리인 크롤로스 자비르(34)도 "우리는 모두 아랍인이고 이집트인"이라며 "종교 간 갈등은 항상 정치인들이 조장하는 것이지 이곳처럼 순수한 농사꾼과 어민만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 명의 딸을 모두 출가시키고 소일거리로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자키 카밀(60). 그는 가게 안에 걸린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에 대해 말하는 서양사람들은 이곳에 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구의 인권단체.언론들은 종종 이집트 내 기독교-이슬람 간 갈등을 언급한다. 실제로 1990년대 초에는 이집트 남부의 아시유트시(市)를 중심으로 양측 간에 유혈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에선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이 한 민족으로 정겹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 많다.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단순하게 사는 일반인들에게 종교는 개인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안식처일 뿐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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