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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에 좌표 굳힌 한국학|하와이 국제학술회의 성과와 그 주변|호놀룰루 최규장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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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학을 세계의 심판대에 올려놓고 1주일동안 열띤 토론을 벌인 회의장은 마치 요람 속의 고고와 같이 한국학의 발돋움을 기약했다. 준비기간 3년. 해외에서 열리는 것 한국학 국제 학술회의는 하와이 대학 주최로 8일∼13일 동서문화교류 센터 아시아 실에서 6개국에서 1백50여명의 한국문제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번 학술회의는 지금까지 현대사 특히 최근세의 우리 나라의 국제 관계에만 중점을 두었던 해외의 한국학에서 한 발짝 나아가 전통 사회의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규명하고자 하는데 큰 뜻이 있었다.
개회사서 클리브랜드 하와이 대 총장은 『한국은 중국과 일본 등 대국의 영향력 밑에서 최근엔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밑에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연면하게 유지해왔다』고 말하고 『한국은 자각과 투쟁 속에서 인간의 공통된 욕구인 「자신을 알고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실증한 소자주였다.』고 말했다.
약 6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준비한 이 회의는 이미 3년 전에 연구 주제를 결정, 13명의 국내학자가 주제를 발표하고 사계의 권위자인 중국학·일본학자가 이에 비평을 가하는 비교 토론이라는 점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심포지엄이었다. 따라서 주제 발표를 하는 국내 학자들은 해외의 동양 학자들에게 선보이는 논문에 세심한 노력을 쏟았다. 회의 진행과정에 엿볼 수 있는 것은 해외 학자들이 방법론을 둘러싸고 혹독한 비평을 가한 것도 있어 공개하지도 않고 비공식 토론으로 들어간 사례도 있었다.
대체로 국내학자들은『국학은 국내에서』라는 구각을 벗어나 해외학자들의 방법론에서 섭취한 바 많았고 또 해외의 중국학 또는 일본 학자들은 그들의 문화와 땔 수 없는 관계에 잇는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회의는 첫날 선사시대, 그리고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구조, 한국의 미적 전통과 지적 전통 및 언어·문학 전통으로 대별해 토론을 벌였고 논진되지 않은 것은 바로 비공식 토론을 가졌다. 마지막 날은 서대숙 교수(휴스턴대 정치학)의 김일성 론으로 막을 내렸다. 캐나다·영국·오스트레일리아에서까지 학자가 참석, 국제회의의 성격을 띤 이번 회의엔 주최자인 할렌·클리블랜드 총장이 소련의 학술원 한국책임자인 게오르기·표도로비츠·김 교수를 초청함으로써 주목을 끌었다.
소련학술원에서 10여명의 한국학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김은 경제사가 전공이며 『이번 초청장에 회의가 끝난 뒤라도 도미, 미 본사 여행까지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정치학자 글렌·페이지 박사가 말했다. 그는 또 가능하면 한국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국제학술회의의 초점은 ⓛ한국이 동아의 전통형성에 기여한 것이 무엇이며, 동아가 한국전통형성에 기여한 것은 어떤 요소냐 ②한국 전통의 두드러진 특색은 무엇이며, 이같은 특색은 어디에서 우러나왔느냐 ③한국 전통사회의 특징은 동아전체의 전통에 어떤 의미를 갖느냐 ④동아 3국의 전통관계를 규명하는데 어떤 비교연구방법이 필요한가였다.
한국학이란 용어가 빈번히 튀어나왔던 것도 이번 회의의 성과라 하겠는데 대국학(?)에 눌려있던 한국학이 비교 방법론을 통해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의 소지를 마련했다 할 것이다. 외교관이었고 미 국무차관을 역임했던 클리블랜드 총장의 개회사 처럼『오늘의 세계는 북평과 모스크바와 워싱턴이 함수관계에 놓여 어느 한쪽만 가지곤 쓸모가 없다. 따라서 북평·워싱턴·모스크바·서울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라고까지 말하고있었다.
회의가 시작될 무렵 서울의 학생 메모 수습 때문에 늦게 왔다면서 비행장에서 곧장 회의장에 온 고병익 서울대 문리대학장에게 모든 참석자들이 박수를 보냈는데 회의장에는 김수근씨의 건축전 작품이 걸려 있었고 코피·블레이크 때마다 은은한 아악이 회의분위기를 적셔주었다.
많은 해외 동양 학자들은 논제인 전통이란 말이 너무 광범하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봉건사회 신앙집적 등 용어를 어떻게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라는 반론도 있었다.
대체로 한국학에 있어서 용어와 명칭의 새로운 정비가 절실함을 확인했다.
명칭보다도 기능을 설명하는 쪽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대체로 해외 학자들은 전통을 행동양식·행태·사고를 분석하는 기능주의로 사실 고증과 제도 분석에 강점을 보인 국내 학자와 어떤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특히 일본학과 한국학은 앙숙(?)이냐는 물음이 튀어나오리만큼 서로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대체로 중국학 학자들은 한국학에 호의를 보이고 너그러운데 반해 일본학 쪽에선 가령 『삼한시대 남쪽 해안 지방의 언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하라』는 등 주체성을 다분히 앞세워 날카로운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번 국제회의에 있어서 언어 소통의 문제가 가장 큰 난점이었는데 동시 통역을 않고 수시 통역을, 그나마 영어·중국어·일본어·한국어로 어느 경우엔 삼중통역이 필요했다.
우리학자들은 국제어에 큰 지장을 느끼지 않았으나 일본학자들은 심한 경우 한국 학자가 통역을 거들어 줘야할 판이었다. 일본학자와는 일어로 주고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왔으나 한국학 세미나에 일어를 사용할 바엔 퇴장하겠다고 버티기도 했다.
학술회의 논문은 곧 손질을 거쳐 출판된다. 이 회의는 하와이 대학 안에 신설될 한국학 센터를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얘기였다.
한국학 센터는 이미 기금은 확보 설립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어 위원장에 서대숙(휴스턴대·정치학), 위원에 윌리엄·핸돈(프린스턴대·정사) 및 하와이 대의 이학수(국문학), 강희웅(역사), 글렌·페이지(정치학)교수가 임명됐다.
한국학 센터는 사회·인문과학을 막론, 한국학의 총본산으로 전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키워 학자학생교환, 장기연구, 출판사업 등을 벌이는데 이를 위해 클리블랜드 총장이 8월 서울에 간다고 말했다.

<고대문화 영향권 싸고 한·일 학자간 날카로운 대립|한국 선사시대 토론서>
첫날 한국선사시대에 관한 공식 토론은 국립 박물관장 김원룡 박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한국 구석기 문화에 관해서는 연세대의 손보기 교수가 공주 석장리 구석기지 유물에 관해 발표하고 발굴 과정을 영화로 보여주었다.
일본 도오호꾸 대학의 일본 구석기 시대 전문가 세리자와·조수께 교수는 몇 개의 유물만 가지고서는 일본 규우슈 구석기 문화와의 관계를 규명하기 어렵고 석기 제작 기술 형태, 지층 연구, 과학적 연대 측정 등의 정확한 데이터를 얻은 후에야 한·일·중 3국의 구석기 시대 문화의 비교가 가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예일대학의 장광칠 교수는 북 중국의 구석기 전통은 한국 것과 유사하며 좀더 광범한 자료 수집과 과학적 연대 측정이 요망된다고 평했다.
이어서 김원룡 박사는 한국 신석기문화에 관한 발표에서 줄문토기 이전 무줄문토기 이전무문토기시대를 설정했고 한국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기원전 3천년께로 끌어 올려 한국 신석기 문화는 기원전 2천년을 넘어설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 도오꾜 대학의 사또·다쓰오 교수와 대립했다.
사또교수는 한국의 줄문토기와 일본의 줄문토기는 같은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양국간의 유사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고대의 김정배 교수는 청동기와 그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라는 논문발표에서 일본학자들의 한국 금석병용기 부정에 대해 반박했고, 한국의 청동기 문화는 중국 상나라의 청동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중앙 아시아의 미누신스크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본 규우슈 대학의 오까자끼·다까시 교수는 청동기 문화 유물을 개별적으로 일본 것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청동기 문화의 특징인 청동검 거울 등을 한 단위로 연구되어야 하겠다고 평했다.

<한국주간 행사 스케치|한국학 붐에 들뜬 하와이 신문마다 특집, 김치 잔치도>
한국학 학술회의를 계기로 하와이 는 한국전통의 주간 행사에 들떠있다. 7일자 호놀룰루·스타·블레틴 지는 대한축전이란 한글 제호로 행사의 내용과 한국의 민속물을 특집 보도하고 잇다. 2면은 한국 소개로 엮으면서 동지는 부채춤·장구춤·태권도·물동이·김치 파티 등의 사진과 함께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제로 한국의 지도를 게재하면서 근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 행사의 주요 내용을 보면 ⓛ 호놀룰루 국제 센터에서는 6백여종의 한국상품과 함께 한국에 관한 필름·슬라이드 등이 11일까지 매일 상오9시∼하오 10시 전시되었다. ②제퍼슨·홀의 아시아 관에서는 김수근씨의 건축 작품을 중심으로 한 범 태평양 건축전이 열렸다. ③7일 밤과 10일 밤에는 한국의 무용·음악·태권도 등을 감상하는 행사를 가졌다. ④8일 밤 호놀룰루 예술원에서는 김원룡씨의 한국 예술 강연회가 있었고 잇달아 전시회도 가졌다. ⑤9일 밤 케네디 극장에서 대한 축전은 한국의 국악과 무용이 공연되었는데 그곳의 교회 합창단이 출연했다. ⑥『팔도강산』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각도를 소개하는 행사가 상영되었다. 다른 행사들은 모두 무료로 제공되었으나 9일의 대한 축전은 성인 2달러, 학생 1달러의 입장료를 받기도 했다.
이 행사들은 하와이 대와 주문화 예술재단이 주관했다. 6일 카피올라니 공원에서 벌어진 김치 야유회는 김치가 남을까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1천 여 명이 몰려 줄을 서 있는 사람이 50여명이나 남았을 때 동이 나고 말았다.
밥을 끼워 1인분에 1달러 50센트씩에 팔면서 담당자들은 『천천히 드십시오』를 연발. 이 자리에서는 또 한국부인 5명이 연방 떡을 만들고 한 남자가 1파운드에 1 달러 씩 팔면서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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