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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의 협의개편-난산…공화 당직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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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무도 모르게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개각과는 달리, 공화당의 요직개편은 뜻밖에도 신중한 협의 속에서 난산이다.
박정희 당 총재는 5일 당 간부들의 일괄사표를 받고 『백 의장이 당 간부들과 충분히 상의한 후 의견을 조정하여 그 결과를 건의하라』고 지시했다.
원내 요직 같은 선출직에 대해서도 지명권을 행사하던 박 총재가 이번에 선출직 아닌 임명직에 대해서까지 상의와 조정을 지시한 것은 대단한 이례다.
인사면에서 나타난 이 같은 박 총재의 영도 방식의 변화는 어디서 온 것일까.
첫째는 개편을 둘러싸고 있을 수 있는 내부 불협화에 대한 간접적인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실상 파벌이 허용되지 않고 있으면서도 비민주적·음성적 파벌 투쟁이 있는게 사실이다. 개편을 계기로 악화될 우려가 있는 이 파벌 기류에 대한 경고 조치로서 상의와 조정이 지시됐다면 그 지시는 하향적 인사권 행사 보다 공화당으로서 소화가 더 어려울 것이다. 둘째는 당의 자주력을 훈육한다는 뜻에서 나타난 변화일 수 있다. 어느 당 간부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공화당은 의존집단 이라고 할이 만큼 자체의 자주력이 없었다. 모든 결정과 방향과 심지어 분위기까지도 총재에 의해 규정되다시피 했다.
공화당은 이제 그 의존성에서 조금은 벗어나야 할때가 된 것이라고 보아 그 길을 박 총재가 스스로 열어 보인 것이 아닐까.
인사문제에 대한상의와 조정을 당의 자주력 배양의 계기라고 한다면 앞으로 당대 정치가 활기를 띠는 것과 함께 책임을 당이 져야 하게끔 짐을 지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당의 자주력문제는 지금까지의 이른바 친정 정치의 탈피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발전양장이 주목된다. 이 점은 비단 공화당의 당내정치뿐 아니라 여야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공화당은 협의와 조정이라는 시험을 치르게됐다.
『당 간부들과의 상의』라고 할 때, 사표를 낸 당사자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협의하라는 뜻으로는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당 간부는 일괄 사표 범위 밖의 간부들-부총재·총재 상임 고문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고위간부들은 착잡한 당내 기류 속에서, 첫 시험 문제를 순순히 풀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대화가 되풀이될지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 당의 큰 일들을 맡겨야 할까요.』
『총재의 뜻을 받들도록 합시다.』『75년을 염두에 두어서라도 총화의 인사가 됐으면 합니다.』『75년 생각은 당분간 하지 맙시다. 그러나 총화체제는 참 좋지요.』…
구체적인 자리를 놓고 특정인의 이름도 거론될 것이다. 그러나 내부적 비판이나 토론이 양성적이지 못했던 공화당에서 더구나 인사문제를 놓고 별안간 얘기가 잘 돌아갈 것 같지 않다.
상의를 하는 고위 간부들이 아닌 당 간부들의 말과 움직임으로도 그런 분위기는 충분히 짐작된다.
어느 당직에 특정인의 이름이 튀어나오면 그 특정인은『풍선으로 띄워 놓고 실격시키는 작전에 걸려들었다』고 비명이다. 실상 설왕설래의 진행과정을 보면 결과적으로 무리 있는 얘기도 아닌 것이다.
당 간부들이 일괄사표를 쓴 5일의 당무회의가 끝난 직후 대부분의 당무위원들이 점심 집으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백남억, 길재호, 김진만씨는 상임 고문실에서, 오치성, 이병희씨는 그 옆의 중앙위 의장실에서 각기 문을 잠그고 반시간이나 구수 회담을 가졌다. 말하자면 두팔 사이의 혈액순환보다 한팔 속에서 각기 두개의 혈액이 순환하는 단폐적 협의가 더 활발한 것 같다.
이번 인사협의는 당직 뿐 아니라 원내간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곳의 요직을 합친 가운데 서열과 관계없이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당 사무총장 원내총무 국회부의장이며 다음은 대충 정책위의장 당무위원 주요상임위원장 당대변인 부총무 등의 순.-
사무총장직은 백남억, 김진만씨 등이 길재호씨의 유임을 희망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병희씨를 기대했다. 책상을 정리해 나간 길재호씨의 사의가 강력 하자 그 대안으로 김창근, 길전식씨의 이름도 떠올랐다.
정책위 의장 원내총무 국회 부의장에는 당직을 거친 거물들의 이름이 거의 모두 오르내리고 있다.
인사협의의 주역이 비친 인선원칙은 대체로 ①지역 안배 같은 것은 고려치 않는다. ②실력자가 뒤에 앉아 안개 피우는 일을 없애고 모든 세력이 참여하는 총화체제를 이룩한다는 것.
이 원칙에서 보면 길재호, 장경순, 김진만, 김용태, 이병희, 김재순, 이동원, 현오봉, 구태회, 민병권, 김창근, 길전식씨 등 이 모두 인선 대상에 올라있다고 봐야한다. 이중 특히 국회부의장을 8년 지낸 장경순씨의 적절한 처우에 고심하고있는 것 같다. 자리가 많은 공화당에 사람은 많고도 없고, 없고도 많다고나 할까.
신민당처럼 파벌이 양성화되어있다면 파문의 세력평가가 어렵지 않지만 공화당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안배의 기준세력 평가에 일치할 수 없는 한 모든 사람이 총화체제라고 납득할 수 있는 답안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의 고위 간부들은.『어느 파벌이라고 해서 당직에서 소외한다든가, 누구하고 가깝다고 해서 중용하는 인사는 되지 않을 것이다. 공화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이행하고 대야 관계의 조정을 위해서도 올·스타·프레싱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있다.
당의 대동단결이나 이른바 총화체제는 지극히 원칙적인 얘기이며 또 누구나가 하는 얘기. 단지 어떻게 하는 것이 총화냐는 저울질이 문제다. 구분이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당내에는 신 주류(백남억·길재호·김성곤·김진만 중심)와 그 반대세력(장경순·오치성 중심과 구 주류연합)의 두 갈래가 있으며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도파가 가장 많을 것 같다.
총화체제는 세력에 따른 요직 안배 외에 파벌의 용해로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파벌의 재편성이면 몰라도 경계를 없애는 용해 는 수사로 있을 뿐 현실정치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
박 총재의 변모된 영도방식, 세력평가를 거론하기조차 어렵게된 음성적 감정적 파벌-이런 속에서 공화당은 개편의 협의·조정 시험을 어떻게 치러 나갈 것이며 거기서 어떤 부작용이 빚어지는 것이나 아닐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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