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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건 쏟아지는데 …'부패 수사본부' 리더십 진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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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2일 서울중앙지검 청사는 하루 종일 어수선했다. 업무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조영곤 중앙지검장이 스스로 감찰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전 10시쯤 시작되는 2차장과 3차장의 현안 브리핑은 모두 취소됐다. 이날도 중요한 일이 벌어졌다. 조사부에서 KT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특수1부는 동양그룹, 특수2부는 효성그룹 사건 수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검사들은 전날 국회의원들을 앉혀놓고 검사들끼리 벌인 인신공격성 폭로전의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특히 난타전의 주역이 조직의 장인 조영곤 중앙지검장과 산하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을 쉽게 다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중앙지검의 한 중견 검사는 “이제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수사를 해도 국민들이 믿어줄지 걱정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과 그의 지휘 책임자였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간의 충돌 다음 날인 22일 서울중앙지검은 하루 종일 무거운 분위기였다. [박종근 기자]

 전신인 서울지검 시절부터 서울중앙지검은 부패 수사에서 대검 중수부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조직과 인원도 다른 지검에 비할 바가 아니다. 현재 중앙지검엔 27개 부서에서 수사와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일반 검찰청이 5~7개의 부서를 두는 것과 비교하면 4~5배 큰 규모다. 검사 수만 213명이다.

 중앙지검장은 이런 거대 조직을 지휘하는 수장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그 중요도는 훨씬 커졌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면서 중앙지검은 대형 부패 사건 수사를 도맡는 핵심이 됐기 때문이다. 중수부에 파견돼 근무했던 특수수사 지원조직의 절반 이상이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왔다. 지금도 동양·효성그룹·KT 등 대기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 등 굵직하고 민감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검의 한 부장검사는 “본인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서는 휘하에 직할부대가 없는 총장에 비해 오히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자리”라고 평가했다.

 이런 조직을 맡고 있는 만큼 강력한 리더십은 필수다. 중앙지검장의 리더십이 무너지면 조직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지휘해야 할 부서와 소속 검사가 워낙 많다 보니 중앙지검장에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02년 10월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가혹행위로 숨지는 일이 벌어지자 당시 김진환 지검장은 감독 책임을 물어 대구고검 차장으로 전보됐다. 고검장 승진 1순위에서 초임 지검장 자리로 내쫓는 문책 인사였다. 이후 강력사건 수사는 전면 중단됐다. 지난해 10월 최교일 지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 수사 때 ‘봐주기’가 있었던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곤욕을 치렀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놓고 서울중앙지검장의 리더십 부재로 인한 혼란 상황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특히 휘하 검사들의 의견 조율을 해야 할 지검장이 이날 “나를 감찰해달라”며 이른바 ‘셀프 감찰’을 요구하면서 리더십 발휘를 아예 포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스스로는 물론이고 자신과 의견 충돌을 일으킨 수사팀까지 감찰을 받게 만들었으니 부하 검사들이 믿고 따르라고 하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며 “주요 사건들이 몰리는데 이를 지휘해야 할 지검장이 감찰을 받게 되면 지휘부 공백 상태가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글=최현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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