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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만 5시간 … 차를 사랑하는 그들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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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닥터돈까스입니다.” 하얀 의사가운을 걸치고 나타난 남자는 기대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내년 1월 전문의 시험 공부하다가 나왔다”며 수줍게 웃는 그를 처음 봤을 때 기대는 (인터뷰가 재미없을 거라는) 우려로 격하게 바뀌었다. 매니어를 쥐락펴락하는 유명 자동차 전문 블로거라는 그의 수식어가 주는 날렵하고 예리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었다. 게다가 이 소박한 말투는 또 뭔가. 과연 이 인터뷰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닥터돈까스, 자동차 애호가 사이에 ‘닥돈’으로 알려져 있는 이 남자는 현재 고려대 안암병원 피부과 레지던트 4년차인 오가나(29)씨다. ‘까남’(까진 남자)과 함께 매달 해외 유명 브랜드 자동차 회사에서 시승 요청이 10여 건 들어올 정도로 영향력 있는 남자다. 특히 그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인 디테일링(세차)의 대가로 꼽힌다.

보통 1만여명, 많을 때는 하루 10만 명이 찾는다는 그의 블로그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게시물 중 하나도 디테일링 노하우다. 댓글만 200여 개에 달한다. 회원수 8만 명에 육박하는 디테일링 카페 ‘퍼샤’(퍼펙트 샤인)에서 활동한 적도 있다. 잠 잘 시간도 없다는 수련의 생활을 하면서도 매주 한 번은 세차에 2~3시간 공을 들인다. 어떨 땐 5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단다. 웬만큼 차를 사랑하는 사람도 감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다. 그를 만나 차에 대해, 디테일링에 대해, 그리고 남자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레지던트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 아닌가. 자기 시간은커녕 잠 잘 시간도 없는데 블로그라니.

 “어떨 땐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까지 섭외 차량 세차하고 사진 찍고 출근한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정신 없이 보내고 퇴근 후 남은 작업 하느라 또 다시 새벽 2~3시까지 뜬눈이다. 그러면 날밤 지새우는 거지. 다행히 의대 시절부터 잠 안 자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 블로거라도 현실세계에 그게 알려지면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것 같다.

 “지금은 동료는 물론 교수님도 다 안다. 물론 처음엔 비밀로 했지만. 의대라는 조직이 조금만 잘 못해도 구둣발로 조인트 까일 정도로 위계서열 문화가 강한 곳이다. 알려지면 당연히 좋을 게 없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맨 처음 주변에서 ‘그게 너였느냐’고 물을 때는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교수님들이 개성이라며 인정해줬다. 이제는 교수님들이 찾아와 차에 대해 조언을 구하곤 한다. 차에 대한 문의가 하도 많아 한때 자동차 딜러를 부업으로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원래 자동차, 특히 외제차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다. 집이 분당이라 통학용으로 대학생 때부터 차를 타기는 했다. 현대 쏘나타였다. 당시 아버지 차는 그랜저였다. 자동차 부품 등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었다. 엔진·휠·브레이크·서스펜션 같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본 적도 없었다. 특히 외제차는 일부 돈 많은 사람의 전유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왜 수입차로 전향했느냐고. 그게 재밌다. 2년 전 K5를 사러 기아차 매장에 갔다. 그런데 직원이 불친절하더라. 홧김에 옆에 있던 BMW 매장에 들어갔는데 직원이 친절한 건 물론 시승감이 좋아 BMW3시리즈 디젤모델을 샀다. 그게 시작이다.”

-불과 2년 만에 BMW 3시리즈에서 5시리즈(535d), M3, 포르쉐 911까지 외제차만 4대를 섭렵했다. 매력이 뭔가.

 “내 블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개인도 시승을 부탁한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 차가 얼마나 예쁘고 휼륭한지 알리고 싶은 심리가 있다. 예쁜 여자친구를 과시하고 싶은 심리와 비슷하다고 할까. 과시하고 싶은데 알릴 방법이 없으니 내 블로그를 통해 자랑하는 거다. 시승기를 올리면 댓글이 올라온다. 그런 반응이 좋은 거다.”

닥돈(닥터돈까스) 오가나씨가 의사 가운을 입고 자신의 차 포르쉐 911 카레라S 유리창을 닦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촬영을 위해 일요일에 만나자고 했더니 닥돈은 처음엔 “아무 때나 좋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 일찍 보자는 요구에 “오전엔 좀…”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알고보니 일요일 오전은 디테일링(세차) 동호회원과 만나 디테일링을 하는 시간이었다.

-남자는 왜 차에 열광할까.

 “성인 남성의 다용도 장난감 아닐까. 취미생활도 되고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욕구를 표출하는 공간이자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직업상 스트레스가 심한데 술·담배를 안 한다. 이것을 자동차로 해소하는 거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꼭 연봉이 높지 않아도 아끼고 쪼개서 외제차를 구입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레지던트 맞벌이인데 월급이 얼마나 되겠나. 그래서 외제차를 구입하면 한 사람 월급은 포기해야 한다. 보험료 등 유지비가 국산차보다 서너 배에서 많게는 열 배 정도 더 드니까. 그래도 매력에 빠지니 안 살 수 없다.”

 -세차 관련 포스팅도 인기가 많더라. 문외한인 나는 세차를 ‘디테일링’이라고 부르는 게 인상적이었다. 어떤 세차 도구를 구비하고 있나.

 “이건 타이어에 바르는 광택제, 이건 휠타이어 세정제, 또 이건 고무보호제…. (※그는 차에 바르는 세차용액만 12개를 꺼냈다.) 이 밖에 세차용 장갑, 워시미트, 휠클리너가 있고 드라잉타월(물기 제거용), 스펀지(페인트 클렌징용), 마이크로화이버타월(버핑용), 어플리케이터(왁스용) 등 20여 개가 있다.”

-세차라는 쉬운 말을 놔두고 굳이 디테일링(detailing)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써야 하나.

 “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세차를 손수 한다. 거기 쏟는 열정을 감안하면 세차라는 표현보다 디테일링이 더 적합하다. 세차는 단지 물 뿌리고 거품 내서 차를 깨끗하게 하는 거지만 디테일링은 그 이상의 꼼꼼한 케어(care)이기 때문이다. 세척은 물론 도장 면의 잔 기스(흠)를 교정하고 차의 모든 부분을 어루만진다. 내가 2~3시간 걸려 하는 이유다. 영국의 유명 디테일러인 폴 달튼은 장인으로 대우받을 정도다. 수퍼카 오너들은 이 사람한테 디테일링받기 위해 줄을 서서 예약한다. 가격도 1회 디테일링에 수천만원대다. 외제차 수요가 늘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는 젊은 층이 급격히 늘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고.”

-세차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겠다.

 “매주 일요일 오전 베스트 샤인 동호회 사람들과 만나서 한다. 보통 2~3시간 걸린다. 5시간 넘게 세차한 날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세차를 하면 5시간씩 걸리나.

 “전에는 비 오는 날 자동 세차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15단계로 세차한다. 예를 좀 들어볼까. 프리 워시(Pre-Wash)단계가 있다. 고압수로 예비 세척을 하기 전 이물질이 지저분하게 묻은 부분에 특수 약품을 뿌려주는 거다. 목욕할 때 때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예비세척의 효과가 커진다. 차를 거품 내서 닦을 때는 전용 카 샴푸와 양모로 된 전용 카 미트(※그는 미트라고 부르지만 보통 사람들은 걸레라고 부른다)를 사용하고 나중에 물기를 제거할 때는 또 다른 전용 드라잉 타월을 사용한다. 이 정도면 ‘다 됐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왁싱을 해야하는데, 그 전에 페인트 클렌징 작업을 한다. 차의 도장 면은 사람 피부와 똑같다. 왁싱은 일종의 화장이다. 생각해 봐라. 화장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또 화장을 하면 피부가 어떻게 되겠나. 그래서 클렌징 약품을 발라 도장 면을 깨끗이 해준 뒤 클렌징 약품 찌꺼기까지 완벽하게 지워내는 버핑 작업 후에야 비로소 화장(왁싱)을 한다. 아기 다루듯이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이 외에 머플러 팁(배연구)도 닦아주고 타이어 광 내는 작업도 따로 한다. 여기에 필요한 전용 약품이 각각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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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각 약품이 2만~3만원 정도 하니까 그렇게 많이 드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100만원 정도 쓴 것 같다. 이보다는 서킷(자동차 경주용 도로)에 가는데 따른 부대비용이 더 든다.”

-그건 또 뭔가.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고 싶을 때 서킷에 가서 드라이브를 한다. 국내엔 안산·용인 등지에 있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 그래서 두세 번만 하면 타이어를 갈아 줘야 한다. 지금 타는 포르셰의 경우 타이어 가는데 400만원 정도 든다. 나는 미국에서 직수입하니까 조금 더 저렴하지만….”

-K5의 불친절한 매장 직원 이후 국산차와는 작별인가.

 “아니다. 국산 세단(체어맨)도 따로 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의 로망이랄까 이상이 스포츠카 하나랑 가족을 위한 대형차 하나 갖는 거다. 포르쉐와 SUV 그랜드카니발의 조합이랄까. 나에게 체어맨은 가족을 위한 이동수단으로서의 도구, 포르셰는 개인적 만족을 위한 오락 도구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조직사회 문제다. 외제차를 산 지인 중 공무원이나 회사원은 마티즈 같은 차를 따로 사서 출퇴근한다. 과장이 SM5를 타는데 SM7 타고 다닐 수 없는 거 아닌가.”

-어지간한 차는 다 타봤을 텐데 품평 좀 해달라.

  “솔직히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는 BMW다. 그런데 스포츠카에 대한 욕구가 있다. 람보르기니나 페라리는 큰 기대를 갖고 탔지만 막상 시승해 보니 승차감이 꽤 불편했다. 조금 타니 허리가 아프더라. 오너들 얘기를 들어보면 도로 방지턱이나 언덕에 올라갈 때 차 바닥이 닿을까봐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그래서 식사나 약속 나갈 때 차 갖고 나가기가 무섭다고 한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관공서나 경찰서·소방서 같은 데 가서 주차 부탁하고 용돈 좀 준다고 하더라.”

-‘닥터돈까스’라는 이름은 어디서 따온 건가. 또 ‘가나’라는 이름은 본명인가.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뭔가 쉽고 인상적인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까스를 좋아해서 처음엔 그냥 ‘돈까스’를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너무 많더라. 그래서 의사라는 전문직을 앞에 붙이면 될 것 같아 ‘닥터돈까스’라고 지었다. 본명 ‘가나’는 한글이름이다. 여동생 이름은 ‘다라’다”

`닥돈` 차에서 나온 세차 용품.

자동차 디테일링(세차) 용어사전

자동차 디테일링(Auto Detailing): 진정한 세차 매니어라면 세차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디테일링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 세차가 아니라 오염·결함제거, 광택 내기 등 차량 모든 부분을 다양한 도구와 세정제품 등으로 청소·관리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버핑(Buffing): 세정·광택제를 바른 차량 표면이 깨끗해질 때까지 소형 전동기인 버퍼(Buffer)나 전용 버핑 타월로 닦는 행위를 말한다.

케미칼(Chemical): 디테일링할 때 차량에 사용하는 세정·광택제 같은 모든 제품. 콤파운드(Compound): 차량 표면에 바른 투명 페인트 층인 클리어코트(Clear coat)에 생긴 흠집을 제거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마 효과가 있는 케미칼 제품.

오렌지필(Orange Peel): 차량 도색을 할 때 도료를 분사한 환경이나 마르는 과정 등에서 문제가 생겨 표면이 쭈그러진 요철 현상.

샌딩(Sanding): 말 그대로 사포질. 차량 표면에 생긴 흠집이나 오렌지필 등을 제거하기 위해 페인트용 샌드페이퍼(사포)를 이용해 문지르는 행위. 물 사용 여부에 따라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글=유성운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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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나(29세)
1984년생
울산 삼신초-분당 양영중-서현고-고려대 의학석사
현재 고려대 안암병원 피부과 레지던트 4년차
자동차 블로그 ‘닥터돈까스’ 운영
자동차 디테일링(세차) 전문 인터넷 동호회
‘베스트 샤인’ ‘퍼펙트 샤인’ 회원

가족
부인 차민아(30·소아과 레지던트)
자녀 1남(3) 1녀(1)


장 보는 곳: 분당 서현역 AK 플라자
운동하는 곳: 고려대 화정체육관 피트니스센터
자주 가는 식당: 사보텐 판교점, 안암점

유명 차 블로거 '닥터돈까스' 피부과 레지던트 오가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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