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린이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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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린이 날」이 지난지 얼마 안되어 두 어린이가 어른들의 그것도 한 딸의 어머니와 장차 어머니가 될 다른 한 여인의 손에 어처구니없이 죽음을 당했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니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두 여인의 성격상의 문제나 그 범행 동기가 다소 다르다고는 해도 이 문제는 우선 사람이 애정의 결실을 박탈당하면 무슨 일이든지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 비단 이 두 사람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본래 얌전한 여인들도 곧잘 아이들에게 『죽어 버리라』『나가서 뒈지라』 소리치고 남자들끼리도 『죽일 놈』 욕을 잘하는데 사실 이런 지독한 저주는 표현은 다르지만 외국에서도 볼 수 있고 모두다 인간의 속마음 (무의식)에 살인까지도 저지를 수 있는 어떤 강렬한 감정이 숨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강열한 감정이 사랑의 형태로 나타날 때 사람들은 누구를 「죽도록 사랑하는」것이며 그 대장으로 향한 자기의 감정이 억압되지 않을 수 없을 때 그것은 또 쉽사리 상대방을 「죽도록 미워하는」감정으로 바뀐다. 이런 감정이 바로 자기도 죽이고 남도 죽이게 하는 무의식속의 「범인」이다.
옛날부터 우리 나라 여인들은 남달리 남편을 「섬기는」데 극성스러웠고 수절을 지키는데 유례없이 철저해서 어느 한쪽에 조금이라도 티가 있으면 쉽게 목숨을 끊었다. 이런 풍조에는 그런 여성의 순종과 순수성을 그리워하고 그것을 장려하기까지 한 우리 나라 남성들의 감상과 이상주의에도 그 책임이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같은 여성들에게 「여자의 운명」을 강요하는 여성들의 편견에도 똑같은 책임이 있다.
염 여인의 범행은 그 「운명」에 대한 항거이기도 하다. 다만 이 두 여인은 직접 남성인 당사자들에게 항거하지 못하고 음성적으로 인습적 가족이 무엇보다 중요시하며 그 「사랑하는」 남자나 「사랑」을 가로막는 여자의 「한 핏덩어리」인 「외아들」을 죽임으로써 복수하고 있다.
두 어린이는 그녀들에게 개인이 아니라 「누구의 외아들」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다.
「외아들」들은 부모를 대신한 제물이 된 것이다. 「독자」에 관한 기사는 많이 읽었으나 나는 지금까지 「독녀」에 대하여 신문이 대서특필한 사건을 읽어 본 일이 없다. 또 외딸을 가진 고 여인의 내연의 남편이 외아들이 아니라 딸을 가졌던들 똑같은 사건이 생겼을까 생각해 본다. 어른들이 딸이나 아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기 때문에 공연히 죄없는 아이들이 화를 입는 것이다.
본능적인 사랑은 맹목적이며 서로 일심동체임을 강조하는 나머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남자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고 발뺌을 하려면 할수록 여자의 애정은 남자를 「뺏기지 않으려는」집념으로 화하고 자살이나 살인이 흔히 이와 같은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쓰이는데 원한이 오죽 사무치면 그렇겠는가, 남자들도 한번 반성해야 한다. 또한 여자들은 아들을 낳아주는 남자의 예속물이 아님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의존심과 집념이란 모두 「자기 생활」이 없는데서 생기는 만큼 이 두 여인의 행동은 결코 강 건너의 화재가 아니며 어른들은 모두 먼저 자기 자신을 반성해야할 것이다.
이부영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 신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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