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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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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직·자금·관록이 서로 만만치 않은 적수가 맞붙어, 이곳에서는 서로 상대방이 3억원의 돈을 쓴다고 주장하는 바람에「3억원짜리 선거」라는 소문이 나 돌고 있다.
5개의 학교를 가진 동성 학원의 총수인 공화당 최 후보는 국회 건설분과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빈민이 많은 고지대지역의 개발공약을 내 세우고 있으며 신민당 정 후보의「해석 동지회」조직에 맞서「인산 청년회」를 만들었다. 정 후보의 호를 따서 만든 해석 동지회는 1천명의 청년 조직인데 주로 비 당원인 이들은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두더지」작전을 펴고 있다. 조직 면에서 공화당은 1만8천명의 공칭 당원을, 신민당은 1만2천명의 당원을 갖고 있으며 선전 면에서도 여당 측은『야당이 오히려 여당 행세를 한다』고 말하는가하면 야당은 『여당은 통·반장을 통한 관권선거를 하고있다』 고 서로몰아 막상막하.
이곳에서는 또「키 재기 경쟁」이란 선거 유행어가 있는데 그것은 합동 강연에서 정 후보가『4선 의원이며 야당의 원내총무인 사람이 떨어진다면 야당존립의 의의가 없어진다』고 관록을 과시하면 최 후보는『사장도 사원이 몇 사람밖에 없는 사장이 있고 수백 수천의, 사원을 거느린 사장이 있다. 공화당의 당무위원이면 야당 당수 격은 된다』고 응수하여 관록 재기로 나온 얘기.
대통령선거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두 사람의 뜨거운 싸움이 계속되는 이곳에서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흑색 선전도 난무하여 4년 전 목포 선거 이상으로 혼전을 이룰 것이란 얘기들인데 유권자의 40%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의 향배가 승부를 가름할 듯. <조남조 기자>
◇후보자 ①최두고(공화) ②전고영(신민) ③최상진(국민)
◇67년 의원 선거 ▲최두고(공화) 37,929 ▲신현오(신민) 23,532
◇71년 대통령선거 ▲공화 63,062 ▲신민 51,991

<고흥>공약과 집념의 「재기」|「마지막 봉사」호소 맞서
4·27선거에서 호남 몰 표의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김대중후보의 표가 전남에서 곡성 다음으로 적게 나온 곳이다. 신민당 공천자가 정기영씨로 일단 정해졌다가 5월 초순 후보 등록 직전에 서민호씨로 갑자기 바뀌면서 싸움의 양상도 바뀌었다.
신동직 후보(공화)는 67년 서씨(당시 대중당)와 대결하여 근소한 표 차로 낙선한 뒤 꾸준히 재기를 준비해 왔었다. 해방 후 초대 고흥 경찰서장을 거쳐 고흥·해남군수를 역임하고 현재 양조장을 경영하고있는 부친의 영향력이 그에게 큰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신 후보는 ①서씨가 고흥에 생활근거지를 갖고 있지 않고 ②67년 당선 후 1년에 4∼5차례 정도 귀향할 정도로 선거구에 소홀했으며 ③67세의 고령에다 ④67년 총 선에서 충분한 대접을 한 셈이라는 점을 들고있으며 고흥∼벌교간 도로 확장 및 포장, 해창만 및 오마도 간척사업 등 지방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신 후보는 나이(45)와 때묻지 않은 인상 때문에 젊은 층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
신민당의 서 후보는『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선친의 유골이 묻힌 고향』이며『지역 사업도 좋지만 앞으로 2년 이내에 국제적으로 큰 변동이 올 것이므로 투쟁력 있는 야당사람이 국가에 마지막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달라』고 한다. 신민당의 전공천자 정기영위원장을 비롯, 공천경합자 지영춘·유박준·김기철씨, 김대중 당 부위원장 송대섭씨가 각기 선거구 상속을 노리고 서 후보를 돕고있으나 보조가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신용우 기자>
◇후보자 ①신동식(공화) ②서민호(신민) ③송기태(통사)
◇67년 의원 선거 ▲서민호(대중) 44,364 ▲신동식(공화) 43,606
◇71년 대통령선거 ▲공화 40,955 ▲신민41,724

<동대문 갑>1승1패의 전적, 내조 대결도 볼만
1승1패의 전적을 안고 다시 맞붙은 동대문 갑구 민관식(공화), 송원영(신민) 양씨의 싸움은 어느 의미에선 두 사람의 정치적 생명을 가름하는「3차 결전」.
민 후보는 4선의 관록과 20년간 이 지역에서 살아오는 동안 다져온 개인지반과 공화당 조직을 통한 착실한 득표에 주력하는 한편, 송 후보는『공화당 독주를 견제하려는 서울 시민의 양식』을 표로 연결하는 것이 기본 전략.
지난 61년 선거에선 4천표 차로 이겼으나 67년엔 1만4천표 차로 져 물러났던 민씨는 원외에 있으면서도 대한체육회장·약사회장직을 갖고 동대문 도서관·신답로 개통 등 꾸준히 벌여온 지역 사업을 앞세우는데 맞서 송씨는 서울에서의 야당 바람과 원내활동에서 가꾸어온 대여투사로서의「이미지」를 내세운다.
이 지구의 유권자는 서민층이 50%, 창신동, 청계천변 판자촌을 중심으로 한 빈민층이 3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중산 서민들은 대체로 고정된 투표성향을 보이는 반면 판자촌 주민들의 성향은 유동적인 듯.
따라서 두 후보는 모두 그들 표 흡수에 힘을 모아 판자촌 양성과 공약을 내걸고 있으며 막바지 자금 공세도 여기에 집중할 기세.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강한 신민당 조직 외에 고대교우회와 교회 등을 중심 한 사조직을 거느리고있는 송 후보는 일찍부터「골목유세」를 시작해서 1백20회의 개인 연설회를 모두 마치는 동안 야당바람이 대세를 좌우하길 기대하고 있다.
송씨 측의 전술을 반칙「플레이」라고 무척 경계하고 있는 민 후보는 지난 4년간 송씨의 업적에 대한 유권자의 냉철한 심판이 승패를 가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후보의 부인이「가정표」를 파고들어 내조의 대결도 볼만하다고들 한다. <윤용남 기자>
◇67년 의원 선거 ▲송원영(신민) 46,197 ▲민관식(공화) 32,207
◇71년 대통령 선거 ▲공화 35,497 ▲신민 54,600
◇입후보자 ①민관식(공화) ②송원영(신민) ③여현탁(국민) ④서정학(대중) ⑤김윤식(민중) ⑥하병욱(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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