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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제11화 경상제국대학(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학생의 기풍>
임문석씨는 졸업 후 평안도선천군수로 갔는데 총독부의 연례 지방행정관회의 때 우원 총독의 농촌진홍정책내용에 대해 농민착취 내용이 많다고 약30분간 신랄한 비판을 가해 『당신은 신문기자나 하시오』라고 총독의 사직권고를 받았다.
임씨가 지방에 돌아가 대죽 지사에게 사포를 내자 대죽 지사는 『한국인으로 그정도 안 하면 되겠느냐』고 사표를 돌려주고 오히려 그가 내무국장으로 영전됐을 때 요직인 지방과장으로 발탁한 일도 있었다.
요절한 작가 이효석씨는 경성고등 보통학교를 졸업 예과에 입학할 때 법과를 지망했으나 소질에 맞지 않는다고 학부에 올라갈 때 문학과를 지망했다.
졸업 후에는 경성농업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학부에 다닐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강국 최용달 박문규 등은 앞서 소개한 경제학교수 삼택녹지조가 지도하는 경제연구회의 멤버였으며 재학 중에는 표면적인 활동은 별로 하지 않고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공산주의서적을 읽고 토론하고 했다.
근엄한 군자형으로 한학에 조예가 깊던 문과 2회생 안용백씨는 중동학교 출신의 만학도로 술을 좋아해 나와 잘 어울렸는데 내가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 사위지기자사(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라는 문귀를 애용하자 여위열기자용(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양을 낸다)이라는 내가 모르던 대구를 알려주면서 취흥을 돋운 일도 기억난다.
일반에 인기가 있던 경성제대 학생은 화류계 여성간에도 인기가 있었다.
대표적인 얘기로 생각나는 것은 엔젤·카페 여급의 자살 사건이다.
이 여급은 제대학생과 열렬한 연애를 하다 이루어지지 않아 음독자살, 또 하나의 강명화 사건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처자까지 있는 예과 학생이 여급과 관계를 맺어 애를 낳게되자 망토에 싸서 묻어버린 사건도 있었다.
당시 학생들이 많이 드나드는 술집으로는 낙원회관·동양구락부·엔젤·카페 그리고 복혜숙씨가 경영하던 비너스·바 등이 있었다.
이들 술집은 요즘 비어홀과는 약간 달라 밴드나 쇼가 없고 손님 옆에 앉은 여급이 술도 따르고 노래도 했다.
개교 초창기에 입학한 학생들은 고등고시에 응시하려고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때 형편으로는 고시에 합격해서 군수가 된다해도 일인서무 과장의 눈치를 봐야했고 도지사는 한국인에 대한 눈가림으로 전국에 걸쳐 1, 2명씩을 임명했으나 심벌적인 존재였을 뿐 별로 권한을 맡기지 않았다.
총독부 관리로 들어가도 수입이 일인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승진에 있어서도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렇다할 항일운동은 하지 못했으나 학생들의 생각은 현실 도피적이어서 학문 연구에 전념할 생각을 가진 학생들 외에는 금융기관이나 자유업에 종사해서 소시민생활을 하려는 풍조가 지배했다.
우리동기가 졸업하던 해부터 법과에 고시무드가 조성되어 4회의 장후영씨가 경성제대 출신으로 최초의 그 시사법과 합격자가 됐다.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로 졸업을 해봐야 동일은행·서울방송국 등 일자리를 주는 곳이 몇 군데 밖에 없었다.
교내에서는 표면적인 차별 대우를 하지 않았으나 대체로 끼리끼리 어울렸고 특히 한국학생들은 축구부를 중심으로 결속했다.
예과 축구부는 연전·보전 학생들과 자주 시합을 했으나 연전연패한 것으로 기억된다.
『예과 때는 신나게 마시고 놀고 공부는 학부에서 하자』는 생각이 전체 학생을 지배, 호연지기를 길러 지도자로서의 인격을 갖춘다는 생각으로 탈선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동대문에서 예과가 있던 청량리까지 허허 벌판 가운데를 전차가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언젠가는 달리는 전차 세우기 내기를 걸어 한 학생이 전차 길 위에 큰 대자로 누워 전차를 세운 일도 있었다.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조그마한 실수는 애교로 받아주어 따스하게 대해주었고 호랑이 같은 일인 경찰도 학생에게는 비교적 관대했다.
4회 졸업생 가운데는 법과에 배정현(전 대법원장 서리) 김영재(전 고검검사·재북) 문과에 원흥균(서울교대학장) 민태식(성균관대 교수) 김종무(전 경기중 교장·3회는 잘못) 조용만(영문학자·고대교수), 의학부에 오현관(전 이대교수) 김근배씨(개업·내과) 등이 생각난다. <계속> [제자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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