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소프라노 이경숙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지금에도 저는 어머니 앞에서는 항상 응석을 부리는 철부지가 된답니다.』
어머니 황보인숙 여사(66)에 대해 성악가 이경숙씨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라고 자랑한다.
『제가 처음 음악, 그것도 성악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온가족이 반대했어요. 그때 오직 어머니만이 저를 이해하시고 가족 몰래 학비를 마련해 주셨지요.』
서울 토박이인 이 여사의 가정은 여자가 무대에 나서 노래를 한다는 것을 큰일로 알았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무척 반대했다고 한다. 그때 시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고 또 딸이 하고 싶어하는 공부를 뒷받침해주기 위해 어머니 황보 여사는 겉으로는 반대하면서 몰래 학비와 기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줘 이 여사가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반대하던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어머니의 정성에 감동, 이 여사의 성악공부에 적극 도움을 주셨다고 이 여사는 그 당시를 회상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황보 여사는 항상 묵주를 곁에서 떼어놓지 않는 자세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여사가 노래를 부를 때는 눈을 감고 묵주를 손에 든 채 기구하면서  듣는다고 이 여사는 말한다.
연주를 앞두고 고된 연습이 계속되는 동안 황보 여사는 딸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인삼에 황밤과 대추를 넣어 마실 것을 마련해 억지로라도 마시게 하는 등 세심한 보살핌을 해왔다고 한다.
『사실 연주하는 날에는 긴장 때문에 식사도 못하죠. 그런 때면 어머니는 색다른 죽이나 음식을 장만, 꼭 무대 뒤로 가지고 오셔서 저를 안정시켜 주시지요.』
이 여사가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꼭 관객 틈에 끼여 관객들의 반응도 살피면서 딸이 실수 없이 끝까지 노래하도록 기구한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어머니 곁을 떠난 이 여사에게 어머니는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꼭 손수 가지고 와서 혼자서만 먹으라고 당부한다고 이 여사는 어머니의 끝없는 정성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연주를 맡아도 너무 걱정 하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머님께 말씀드리지 않아요. 지난번 오페라 춘향전에서 춘향이역을 할 때는 큰 칼을 목에 걸었는데 실은 별로 아픈 것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제가 아플까봐 무척 마음을 쓰셨어요.』
『이제는 노래하는 딸들 때문에 부르지는 못하지만 듣고 비평할 줄 알게 되었다』는 황보 여사는 지금 미국에 있는 이 여사의 동생 명숙씨와 자매 음악회를 열었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다면서 항상 건강한 몸으로 딸들이 실수 없이 노래하고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라고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보여주었다. [권처련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