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어린이날-중앙일보로 인연 맺은 진미란양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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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마우신 미국아저씨가 보내주시는 돈으로 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 꼭 은혜를 갚겠어요. 우리아빠는 아직도 집에 안 돌아오셨어요. 아빠 돌아오시면 엄마의병도 낫고 매일 아빠를 찾는 동생 수연(5)이가 제일 기뻐할 것 같아요!』 어린이날인 5일 서울전곡국민학교 6학년7반 진미란양(13)은 매달 꼬박꼬박 학비를 부쳐주는 어느 미국아저씨에게 편지를 썼다.
세동생과 병든 엄마 등 다섯식구를 버려둔 채 집을 뛰쳐나간 무책임한 아빠를 원망하면서도 미란양은 오래도록 병으로 누워있는 엄마의 손을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보느라 일손이 바빴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처럼 운동장에서 뛰놀 사이도 없이 미란양은 곧장 집으로 오곤했다.
어린 마음에도 『무정한 아빠를 생각하며 울고만 있는 것보다 고마우신 외국아저씨와 은혜를 갚을 길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어머니의 병을 간호하고 어린 동생들을 잘 보살피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년 어린이날 미란양은 가장 슬펐다. 6개월째 집을 나간 아빠는 소식이 없었다. 엄마마저 몸저 누워 버렸고 동생들은 밥 달라고 매달렸다.
석공인 아빠 진종덕씨(35)는 69년11월15일 아침 경기도 양주에 일하러 간다면서 집을 나간 후 소식이 없다.
아빠가 3년전 경남진주에서 일할때 하숙집 딸과 눈이 맞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났다.
하루아침에 아빠를 빼앗긴 어린 4남매는 며칠을 두고 아빠를 기다렸으나 허탕이었다.
엄마 박량례씨(35)는 아빠를 찾아 나섰다.
양상양과 동생 수엽군(10·전구국교 3학년5반)은 다니던 학교도 쉬어야만했다.
엄마마저 병이 났다. 그러나 엄마는 밥을 달라고 우는 동생들을 보다못해 아픈 몸을 이끌고 대폿집에 나가야만 했다.
「멍든 동심」의 이야기가 작년 어린이날 중앙일보에 실려지자 미란양의 집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기독교아동복리회 한국지부거댁구호 서울분실(분실장 최기단)에서 한통의 편지가 왔다.
「무책임한 아빠」대신 학비를 보내주게 되었으니 낙망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동복리회에서 미란양의 이야기를 세계방방곡곡에 알린 결과 미국에서 「딘·딕슨」이라는 아저씨와 「로버트·팀케」라는 아저씨가 각각 미란양과 수엽군의 학비를 대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두 남매는 작년12월부터 남부럽지 않게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되었고 매달 한사람에 2천4백원씩 송금해오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며 아빠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김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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