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품 판매업계에 폐업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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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시내 약품 판매(도매)업계에서 며칠 사이에 청계 약품 판매부(대표 장민수) 한국 비락 약품(대표 박태식) 화신약품(대표 진한철) 등 3개 업체가 잇달아 문을 닫은 데 이어 6개 도매업체가 또 폐업 계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져 주목을 끌고있다.
청계 약품(판)은 몇 해 동안 계속된 적자운영 끝에, 한국 비락 약품과 화신약품은 각 1억5천만 원과 1천5백만 원의 부채 때문에 자진 폐업한 것이다.
6·25 동란 직후에 출발, 20여년 간 약품도산매를 해온 청계 약품(판)은 오랜 세월동안 닦아온 지반에 다 자가 약품 제조 부를 가지고 있어 업계에서는 유망한 업체로 지목되어 왔다.
비락 우유 수입·판매로 실력을 쌓은 한국 비락 약품은 69년 말에 주먹구구식 경영이 판치는 약품판매업계에서 철저한 재고관리 등을 통한 합리적 경영을 「모토」로 출발한 「다크·호스」로서 대형 판매점의 첫 주자.
이렇듯 유력한 약품 도매업체가 도산한 데에는 제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약품 판매업계의 과당경쟁에 희생됐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3월말 현재로 서울 시내에는 약2백 개 제약회사와 1백23개 도매상, 그리고 3천7백85개 산매상이 있다..
약품의 유통구조는 「메이커」∼도매상∼산매상∼소비자로 돼 있으나 군소 「메이커」들은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산매상과 거래하는 이중구조가 형성돼 왔다.
대 「메이커」들은 정상 「루트」에 따라 중간 도매상에 연15%의 기업 보존금(마진)을 주고 약품을 거래해왔으나 69년 말 이후 16개 유력「메이커」들이 이를 폐기, 산매상과 직접 거래를 시작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약품을 구입하는 가격이 변두리 산매상에서 사는 것과 중심가 도매상에서 사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지게 되어 도매상들이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자사제조 약품 5%, 타사 약품 95%를 도산매해온 청계 약품(판)은 69년 이후 「메이커」가 산매상에 넘겨주는 가격과 같은 값으로 산매상에 약품을 투매, 이로 인한 적자누증으로 폐문 하게 됐으며 한국 비락 약품은 이러한 풍토에서 약품 판매업계에 지반이 없어 거래선을 확보하지 못해 폐업하고 만 것이다.
업계에서는 약품 판매업계를 휩쓸고 있는 투매와 난매 현상이 해소되지 않는 한 도매업체의 폐업 사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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