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임대희] 중국의 호구(戶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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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공산세력의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커다란 분기가 되는 시점이 정강산(井岡山)이나 연안(延安)이라는 거점을 차지했던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이 시점까지는 국민당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이므로, 공산세력으로서는 주변에 있는 농공(農工)세력을 자신의 우호세력으로 만들고자 여러 가지 정책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군이 물러난 뒤에 실제적인 지배 범위를 넓혀나갔고, 여러 도시들을 점령해 나가서, 결국 북경(北京)까지도 점령하게 되자, 현실적으로 도시주민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생겼다. 그리고, 농촌 주민들이 급격하게 도시로 밀려오는 사태도 방지해야 하였다. 그리하여 생긴 것이 후커우(戶口)였다.

도시에서는 양식(糧食)이나 고기등의 배급에 후커우가 있는 주민에게만 배급표(配給票)를 나누어주었으므로, 다른 지역에서 이동해 올 때에는 가격이 엄청나게 달랐기에 감당해 나가기 힘들었다. 그 뿐 아니라, 자녀의 교육에도 후커우(戶口)가 없는 지역에서는 입학시킬 수 없었다. 최근에 경제적인 상황이 바뀌면서 은행에서의 대출에서도 후커우(戶口)가 있는 지역 이외에서 대출을 받으면 이자율이 달랐다. 최근에 해당 도시에서 서민들에게 주택 마련에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후커우(戶口)가 없으면 “경제적용방(經濟適用房)”이나 “보장방(保障房)”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기에, 애초에는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요즈음에는 지방에서 도시로 유입하려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후커우(戶口)제도가 가지는 불평등을 거론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중국의 신문에 북경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북경의 후커우(戶口)를 가지려고 할 경우에 38만 위엔(元)의 가격이 형성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최근에 북경 후커우가 지금도 38만위엔이냐고 물어보니, 공안국장과 매우 친하다면 그 정도 가격으로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아주 변두리 지역의 주소가 될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지금의 일반적인 정상가격은 100만 위엔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변두리 지역이라고 하는 것은 자녀를 좋은 학군(學群)에서 학교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북경시내에 있는 해당지역의 학구(學區)에 있는 초등학교나 중등학교에는 입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북경시내의 대학교에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에도 후커우(戶口)가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는 수능시험(高考)의 만점이 700점일 때에는 전국적으로 같은 시험문제 문안을 이용했기에 비교가 쉽게 되었었다. 당시에는 가령 북경의 후커우(戶口)를 가진 학생이 북경대학의 괜찮은 전공학과에 입학하려면 580점은 받아야 했는데, 지방의 후커우(戶口)를 가진 경우에는 최소한 620점을 넘어야 했었다. 각 지방마다 할당 인원이 달랐으므로, 그 최소 점수가 달랐다. 지금은 만점이 810점으로 바뀌었고, 각 지역마다 출제 문제가 달라졌으나, 위와 같은 점수의 차등은 예전과 거의 비슷하다. 그만큼 외부 지역의 학생이 북경이나 상해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셈이다.

후커우(戶口)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與否)는 주택을 구입하고자 할 때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용방(經濟適用房)”이나 “보장방(保障房)”은 5년 이상 매매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싼 가격으로 주택을 할당받는 정책적인 항목이다. 이 경우에도 후커우(戶口)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그리고, 주택을 빌리려고 하는 경우에는 1인당 10㎡가 기준이 되는데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방을 반납하면 위의 규정하고 있는 수치에 따라 임대해 주는데, 이 경우도 해당 도시의 후커우(戶口)를 갖고 있어야 신청자격이 있다.

은행에서 대출하는 데에도 해당 도시에 후커우(戶口)를 갖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이자율이 다르다. 소규모 자금일 경우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겠지만, 주택의 매매등의 경우에 은행에서 대출받으려면 후커우(戶口)가 해당도시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매우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병원에 가는 데에도 해당 도시의 후커우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의료보험의 적용여부가 달라지며, 또한 적용되는 경우라도 부담금의 비율이 달라진다. 가령 소아과(小兒科)는 큰 도시에 좋은 병원이 있게 마련인데, 이를 그대로 개방해 버리면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오게 되므로 병원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도시의 후커우(戶口)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진료를 제한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3년 이내에 이러한 제한을 가급적 해제하겠다는 계획인 모양이지만, 의료부문 인원의 지역적 편중이 심한 편이므로, 과연 계획대로 해결이 될지는 기다려 보아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 재학중인 기간 동안에는 후커우(戶口)는 임시적으로 재학하는 학교로 되며, 학생증이 후커우를 대신한다. 졸업과 동시에 본래의 후커우가 있던 지역으로 행정적으로 이관된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후커우(戶口)에 나타난 도시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혜택이 달라지므로, 젊은이들이 사귈 때에도 이 점이 알게 모르게 알력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가령, 북경에서 북경의 배우자를 만나면 각기 가질 수 있는 주택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다른 지역의 배우자를 만나게 되면 어느 한 쪽 만의 주택을 확보하는 셈이므로, 다른 한쪽에게는 공연히 상대방이 매우 콧대를 높게 뻐개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게 된다.

후커우(戶口)의 소재지에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이 쌓여가자 점차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도농(都農)사이의 갈등이 심해졌다. 그에 따라서 이에 대한 시정(是正)을 시도한 것이 중경(重慶)지역이었다. 정치적 야심을 가졌던 보시라이(薄熙來)는 이러한 분위기를 재빨리 파악하여 농촌지역이 느끼는 불평등을 고치려고 노력하여서 인심을 끌어들였다. 따라서 중경(重慶)지역은 후커우(戶口)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 제한을 해제하였다.

이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보게 된 다른 지역에서도 후커우(戶口)가 가지는 불평등한 차별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단지, 그러한 제한을 일시적으로 해제하게 될 경우에 생기는 현실적인 제약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점차적으로 후커우(戶口)제도가 개선되기는 하겠지만, 하루 아침에 모든 제약을 풀기 어려운 점도 존재하고 있다.

후커우(戶口)는 한국의 주민등록과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60년대에 도민증을 가진 시골의 친지들이 서울에 오면, “아, 도민이 특별시에 왔구나, 반갑다”라면 환대해 주곤 하였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시민증을 가지고 있었고,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각 도에서 도민증을 발급해 주었기에 생기는 우스개였던 것이다. 시민증이나 도민증이나 거주하는 지역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 가운데에 알게 모르게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던 것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젊은이들의 통일관을 통계조사를 해보니, 통일을 반가와 하지 않는 인원이 상당한 비율로 높게 나온다는 결과가 나왔다. 통일이 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경제적인 부담을 힘겨워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설을 들었다. 통일이 되므로서 국격이 달라질 것이라는 미래의 희망보다도 당장에 개인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자체가 힘들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필자처럼 전쟁이 끝나기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라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즐겨 노래 불렀던 세대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시대의 변화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떤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지금의 개성공단처럼 북한주민의 저임금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기업인으로서는 기업하기 쉬운 조건일 수도 있다면서, 그렇게 되려면 북한 정권이 당분간은 버텨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설명에 조금 놀란 적이 있다. 실제로 지금 베트남에 진출해 나가 있는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지불하는 임금(賃金)이 개성공단보다도 3배 비싸다는 사례를 들기도 하였으며, 중국의 임금은 베트남의 임금보다도 2배 비싸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 수치 자체가 해당국의 경제적인 지표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지 못하게 통일이 빨리 다가올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사안으로서는 북한 주민들이 대거 몰려와서 사회적 불안이 생기게 되는 점인 것 같다. 지금도 서울이나 인천, 경기도 지역에 인구 집중이 되어서 문제점이 많은데, 또 다시 북한 주민마저도 보태게 된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통일 뒤에 가급적 빨리 북한 지역의 산업배치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겠다. 그 이전에 인구 이동이 심하게 움직이게 되면, 일단 정착한 곳에서는 다시 되돌아가려고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점들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후커우(戶口)제도를 예비적으로 검토해 두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대희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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