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점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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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베를린=김지운 특파원】영국 관할 지구의 한 제한 거리에 자리잡은 「에덴·호텔」은 마치 여인숙 「타입」의 조그마한 「호텔」이었다. 주인은 「호텔」을 나서는 유씨의 표정엔 『아무런 이상스런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본 기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가 숙박하던 3일 동안 아무런 전화 연락도, 방문객도 없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나갈 때 모조 가죽으로 만든 조그만 한국산 「보스턴·백」을 놓아두고 가면서 나중에 가지러 오겠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유씨가 잠적하기 직전에 만났던 한국인들은 그의 거동에 의아스러운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와 만났던 사람은 「베를린」에서 간호원으로 근무중인 손금자·이미자씨 및 가톨릭 수녀 「아그네스·박」양 등이었다.
한편 현지 한국 대사관 측에 의하면 유씨는 5일 중으로 「본」에 귀환할 예정이었으며 유씨가 「베를린」에 가기 이틀 전에 「에덴·호텔」에 장거리 전화로 방을 예약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베를린」경찰은 한국 대사관 측의 발표를 인용, 유씨는 대사관에서 기밀 사항을 취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유씨 가족을 「베를린」에 초대하여 실종되기 하루 전에 점심과 저녁을 함께 한 손금자씨에 의하면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베를린」 장벽을 구경하며 상당한 액수의 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부인은 다소 다변형이며, 가정 생활은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니었다고 한 측근이 말했다.
정릉 2동에서 이웃에 살았다는 간호원 손금자씨가 유씨 일가족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인데 손씨는 지난 3일 갑자기 걸려온 전화 요청을 받고 유씨 부부와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하는데 그때 둘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태연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유씨 부인은 손씨가 입고 있던 「코트」를 입어보며 자기한테 팔라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손씨는 한가지 이상한 점으로는 유씨가 그 전날 다른 노무관 동료의 송별회에서 먹은 음식이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 아내보고 빨리 「호텔」로 돌아가자고 재촉하더라는 것이다.
손씨와 같은 기숙사에 사는 간호원 이미자양도 유씨에게서 아무런 이상스런 점도 발견 못 했다고 말했다.
호텔 주인에 의하면 유씨 가족은 사흘동안 체재하며 꼭 두번 외출했는데 한번은 「베를린」장벽을 구경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씨의 가방 속에는 담배 및 비행기 내에서 제공되는 각 사탕과 후추가 들어 있었고 이 밖에도 「포스트·카드」가 40장, 손씨가 주었다는 구급약과 미국의 사회 경제 구조에 대한 서적이 들어 있었다.
유씨의 가방 속에는 「체·게바라」에 대한 추도문이 적힌 1권의 책이 들어있음이 밝혀졌다.
유씨 부부는 손씨와 이씨에게 5일에 「본」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으며 한국 대사관 측에서도 그의 귀환 예정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알려진 대로 5일의 비행기 예약을 하지 않았다. 실종된 유씨 가족을 동「베를린」으로 가는 고가 철도역에까지 태워주었다는 「택시」 운전사의 신고가 있은 뒤 경찰은 어째서 유씨 가족이 「템펠호프」 공항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했는지에 수사의 촛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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