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평가되는 두 『서구 문학』|『하인리히·만』 탄생 1백돌|베를린=이선구 통신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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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참여의 작가이며 진정한 민주 시민이었던 독일 작가 「하인리히·만」이 지난 3월27일로 탄생 1백년을 맞았다.
『마의산』의 작가 「토마스·만」의 형이기도 한 그의 탄생 1백년을 계기로 독일 문단은 「하인리히·만」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신민』『운랏 교수 또는 폭군의 종말』 등의 작품으로 전후의 구김살 없고 짓눌림 없이 자란 젊은 세대 가운데서 진정한 독자층을 발견하는 「하인리히·만」은 독일의 권위주의적 사회 체제에 저항해 외지에서 세상을 떠난 소위 「이민 작가 그룹」에 속한다.
그는 동생 「토마스·만」의 문명에는 뒤지나 정치적 선견으로 「히틀러」「제삼제국」 의 내도를 예언하고 「빌헬름」 제국 시절의 맹목적인 복종과 과장된 소시민적 질서에의 집착을 조롱하여 많은 동포의 노여움을 샀다. 그래서 「나치」의 프랑스 점령과 더불어 그가 선택한 고향 「파리」에서 또 한번 북미주로의 어려운 이민의 길을 가야 했던 참여의 작가요, 진정한 민주시민이었다.
보불 전쟁에 이긴 「프로시아」가 억지로 선포한 독일 제국이 이룩되던 1871년 북독의 「한자」 도시「뤼벡」시 문벌가의 큰아들로 태어나 「제삼제국」이 멸망한 지 5년 후 (1950년)「캘리포니아」주「샌터모니커」시에서 외로이 죽은 이 작가의 일생은 「프로시아」「바이마르」 또 「나치」 시절을 다 경험한 애처로운 독일 고난사의 증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1930년 금발 여우 「마를레네·디트리히」와 「에밀·야닝스」의 영화로 일약 유명해진 그의 소설 『「운랏」 교수 또는 폭군의 종말』은 작가가 여지껏 집착하던 대도시적 「보히미언」적인 넓은 세계에서 편협하고 촌스러운 독일의 소도시로 그의 관심을 돌렸음을 의미한다.
작가 「하인리히·만」은 소도시의 일상 생활을 풍자한 이 소설에서 「운랏」의 인물에 우리 사회 어디서고 볼 수 없는 지신의 불만감을 해소하지 못하여 생긴 공격욕과 편협한 국수주의를 가지고 죄 없는 아랫사람을 들볶는 권위적 인간의 전형을 묘사했다. 한편 「착한 인간의적」으로 표현된 운랏 교사에 대치되는, 민중의 딸 「로자」는 이종전의 「인간의적」을 인간적인 동정을 통하여 착한 인간으로 귀화시킨다는 작가의 민주적 사회 도덕관을 실현한 인물이다.
1914년에 완성된 소설 『신하』 에서 작가는 또 한번 독일 역사의 배경을 뒤로하고 편협하고 국수적인 소시민의 벼락 출세와 자유로운 인간성의 몰락을, 그리고 「폭군-신하」관계의 변증법을 통하여 또 한번 신랄한 사회 비판을 가한다.
전쟁이 끝난 후 억압이 없는 사회에서 마음껏 개성의 발휘를 구가하는 이 나라 청소년들 사이에 그의 작품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북독의 한때 번성하던 그의 출생지 「뤼벡 」 시 당국은 그의 생가 「부덴브로크」가에 작가의 1백년 탄일을 계기로 기념비를 세우고 시내에 기념가를 그의 이름에 따라 명명할 것이라 한다.
구미 여러 나라로부터 몰려든 「케르마니스트」들은 그의 탄일을 맞아 「하인리히·만」 대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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