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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한국의 요람 과기원|기공 앞두고 살펴본 청사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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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 과학원은 오는 12일에서 20일 사이의 어느 날에 다른 2개 연구 기관 (한국 개발 연구원·한국 국방 과학 연구소) 과 더불어 말썽 많던 서울 연구 개발 단지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임업 시험장 내) 에서 건물 기공식을 갖는다. 지난해 3월 설립이 알려지면서부터 찬반의 의견이 엇갈렸던 한국 과학원은 그 뒤 그것이 세워질 부지 때문에 또 한번 파동을 겪더니 드디어 예정된 곳에서 건물 기공식을 갖게됐다. 산업계를 위해 유용한 고급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특수 이공계 대학원으로서 발족한 한국 과학원에는 앞으로 5년간에 내자 약 50억원, 외자 약 6백만 「달러」가 투입될 예정. 한국 과학원의 현황과 미래에 촛점을 맞춰본다.
한국 과학원의 설립자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70년3월5일에 경제 동향 보고를 받으면서 이 과학원 설립 계획의 추진을 지시했다. 이렇게 한국 과학원 계획이 알려지자 주로 학계에서 찬반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대학교의 대학원이 유명무실했던 것이 바로 예산 부족과 지원 부족 때문이었는데 기존 대학원을 살릴 생각은 않고 새로 만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 반대자의 논리였다. 그러나 찬성자는 어느 한 대학교의 대학원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면 다른 한 대학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또한 같은 대학원의 이공계에만 치중하면 의학 인문 사회 과학 분야가 그대로 있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새롭고 강력한 이공계 대학원으로서 한국 과학원을 설립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 한국 과학원 설립 위원회가 구성됐고 미국의 저명한 전기 공학자이며 공업교육자인 「F·E·터먼」박사 (「스댄퍼드」 대 명예 부총장)를 단장으로 하는 5명의 타당성 조사단이 70년7월에 내한하여 찬성자에게 유리한 보고서를 냈다. 그에 앞서 한국 과학원 설립 계획은 한국 과학원법의 국무회의 및 국회 통과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 뒤 한국과학원법과 이 시행령이 공포됐고 지난 1월26일엔 정관이 작성되어 2월10일부터 시행을 보기에 이르렀다. 그 다음날 이상수 원장 (전 원자력 총장)이 임명됐고 이 사진이 구성됐으며 2월16일엔 등기를 마쳤다. 그 다음 2월18일엔 창립 이사회를 가졌으며 2월22일부터 창경원 옆 국립 과학관 5층에 임시 사무실을 두고 업무를 개시했다.
이렇게 보면 일사천리로 일이 추진된 것 같지만 서울 연구 개발 단지 문제로 생물 학계에서 임업 시험장 안의 귀중한 식물을 손상시킨다는 맹렬한 반대를 받는 등의 예기치 않던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수 원장은 한국 과학원의 장래는 양양하다고 자신만만하다. 지난 3월13일부터 26일까지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다녀온 이 박사는 그곳에 있는 다수의 「한국의 두뇌」 들이 쾌히 귀국해서 교수로 취임할 듯을 표시했을 뿐 아니라 「닉슨」 대통령의 과학 고문 보좌관인 「헤프너」박사·「해너」AID 처장 등 미국 당국자가 기꺼이 물심양면의 지원을 약속했다고 기뻐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번 도미 시공학 박사 학위를 가진 한국 과학자 20여명과 만나 귀국을 타진한 결과 거의 모두가 수락할 뜻을 비쳤다고 한다. 한국 과학원 교수로 취임할 뜻이 있어도 귀국 1년 전에 계약을 맺어야되기 때문에 이번에 접촉한 과학자들도 71년3월쯤에나 귀국하게 될 것이다.
이 박사는 한국 과학원에 대한 6백만 「달러」지원이 오는 6월 미국 국회에서 통과된다고 말하면서 국내에서의 다소의 문제는 노력해서 해소하면 된다고 여유를 보이고 있다.
한편 금년 예산 5억4천만원으로는 도서실 (임시 강의실)·아파트·식당·휴게실 등을 지어나갈 것이라고 한다.
학생은 72년엔 산업 과학과와 기초 과학과 (특히 응용수학과) 만 20 내지 30명을 뽑고 73년에 또 몇 학과를 뽑고 74년에 가서야 모든 학과 학생을 뽑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7개학과 중 실험 시설이 없는 과목서부터 대학원 학생을 엄밀하고도 객관적인 시험에 의해서 뽑고 순차 실험 시설을 갖춰나갈 것이라고 이 원장은 말했다.
이 원장은 전문 석사 제도에 대해서는 당분간 보류할 뜻을 비쳤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전문 석사란 석사는 땄으나 박사는 되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있어서 그 성격이 불투명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석사와 박사 제도가 확립된 다음에 그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우러날 때 전문 석사 제도를 고려하겠다고 이 박사는 강조하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박사 과정은 74년부터나 시작된다는 것이다. 전임 교수는 외국에 있는 「한국의 두뇌」를 월봉 5백 「달러」 내지 1천 「달러」 정도로 불러오고 국내에선 교환 교수 형태로 우대해서 참여시킬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교수진은 약 1백명을 확보할 예정인데 그 반수가 전임이 될 것이다. 교수직제에 대한 대통령령이 나와야 일부 교수의 임명이 있게 되며 10주일 이내의 입대 훈련만으로 병역 면제 시키는 국무총리령이 곧 공포될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쿵저러쿵 말은 있지만 한국 과학원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며 그에 대한 기대가 아주 큰 것만은 사실이다. 과연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 <이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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