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경제 view &

선진국 시장, 비틀스 'Yesterday' 같은 매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마이클 리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

현 시대를 특징짓는 주요 키워드의 하나가 ‘변화’다. 대중가요의 트렌드가 변하는 속도만 보더라도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세태에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가수가 있다. 바로 영국의 전설적 록 밴드 그룹 비틀스다. 비틀스의 대표곡 ‘예스터데이’는 4억 장이 넘는 글로벌 누적 음반판매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투자처 중 비틀스와 같이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을 만한 곳은 어디일까. 오래전부터 쌓인 명성과 노하우, 그리고 브랜드파워를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들 기업은 세계 경제의 불황 속에서도 꾸준히 수익을 창출하고 성장을 거듭해 변화하는 환경하에서도 여전히 정상급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런 기업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대부분이 선진국 기업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선진국 시장에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0년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유로존 주변 국가들로 확산되면서 유로존 국가들의 증시 역시 큰 폭으로 하락한 바 있다. 이런 유로존 리스크는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은 상태다. 한편 미국도 지난해에는 재정절벽, 올해에는 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끊임없이 시장의 불안을 야기하는 한편 최근에는 연방정부 폐쇄로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킨 바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리스크들은 선진시장, 이머징시장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잠재되어 있다. 오히려 리스크 발생 가능성을 감안할 경우 더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곳은 선진시장에 속한 기업들이다. 실제 선진국 증시에 상장된 대부분의 기업은 수익의 대부분을 이머징마켓 등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글로벌 대기업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영국의 FTSE 100 지수나 독일의 DAX 지수에 속한 기업을 살펴보면 해당 기업 중 35% 미만의 기업만이 해당 국가 경제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다. 통신, 은행 및 유틸리티 업종 내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선진국 시장 내 대부분 기업은 해외에서 주로 수익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이다.

 브랜드도 그렇다. 선진국에 본사를 두고 있거나 선진국에서 운영하는 브랜드와 기업들이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랜드는 가장 중요한 기업자산 중 하나인데,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은 실질적으로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선진국 기업들은 소비증가 발생지역이 세계 어디든 상관없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된다. 중국 등 이머징 국가들의 중산층 확대와 소비의 고급화에 따라 명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매출이 상승하는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선진국 기업들은 국지적인 리스크 발생에도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함은 물론, 피해 규모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가격결정력을 무기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만큼 재무상태가 건전하고 저비용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아직까지 선진시장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특히 유럽에 투자하는 펀드의 설정액은 약 1800억원으로 전체 해외 주식형 펀드의 1%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GDP 성장률을 투자결정의 척도로 사용하는 데 있을 것 같다.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이나 기업의 규모가 이미 성숙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점은 GDP 성장률과 기업의 수익은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실질GDP 성장률이 가장 낮았던 곳은 유럽이었지만 유럽 기업의 이익 성장과 증시의 상승률은 글로벌 평균보다 높았다.

 비록 GDP 성장률은 낮을지라도 선진국 기업들 중에서는 견실한 펀더멘털과 역사적으로 쌓아온 산업경쟁력이 있는 승자 기업이 두루 존재한다. 새롭게 떠오르는 신인가수와 같은 트렌디함을 가진 기업이나 국가에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꾸준한 트랙레코드를 바탕으로 그 자체로 브랜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비틀스’와 같은 스테디셀러 기업 및 시장도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이클 리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