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기숙청년회(7)>YMCA의 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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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상동파 인물중에 이갑씨가 있었다. 그는 일찌기 일본에 건너가 무관학지를 졸업하고 노백린 윤치성씨 등과 같이 일노전쟁때 일본군에 가담하여 전공을 세운 당당한 장교였다. 그는 평안도 사람으로서 민영휘씨가 평안감사로 있을 때 자기의 아버지가 그 사람 때문에 재산을 빼앗기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늘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돌아오는 즉시로 민씨댁을 찾아갔다. 뜻밖의 손님을 맞이한 민씨는『그대 젊은 사람은 누구요?』했다. 그러자 이갑씨는『나를 알만할텐데 왜 모른척 하오? 똑똑히 보시오! 아무게 아들 이갑이가 일본서 선물을 가지고 왔소』했다. 민씨가 깜짝 놀랄때에 『자! 이것이 선물이오. 많이는 못 가지고 오고 다만 한방 뿐이오』하면서 속주머니에서 총알 한알이 든 육혈포(피스톨)를 꺼냈다.
민씨도 큰 인물인지라 『여보게 젊은이! 자네가 한방 쏘면 나는 죽고, 자네는 원수는 갚는 것이 되오마는 인생이란 한번 나서 유익한 일을 남기고 가야 할텐데 자네가 살인을 하면되겠소? 하니 여기 땅문서를 다 줄테니 아예 경솔한 짓은 마시오』했다(휘문의숙의 창설자) .
이갑씨는 그럴듯하게 생각하고 그 땅문서를 받아가지고 나와 팔아서 그 돈으로 지금 낙원동에 있는 건국대학 야간대학이 있는 자리를 사 가지고 서북학회를 창설하는 동시에 오성학교를 시작했다. 이러한 자리에서 유도를 했고, 월남 이상재선생은 YMCA에서 유도가 처음 시작될 때 『여기서 장사 백명만 양성하자』고 말했다고 하니 어찌 범상한 말로 지내버릴 수 있겠는가?
다시금 김홍식씨 얘기로 돌아가서, 한일합병후 YMCA는 큰 수난을 겪게됐다. 그때 부총무로 있던 김린이란 사람이 김윤호, 단우청차낭씨 등과 소위 유신회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가지고 일본인 YMCA에 예속시키려고 했다. 그리고「황성」이란 두자를 빼고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로 만들자는 음모이었다.
이 기미를 눈치챈 이명원·서병조·이인형씨 등 Y직원들은 밤중에 뛰어다니며 연락하여 임시총회를 열었다.
김린씨 일파는 조합교회 교인들과 유신회측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총회를 방해하러 막 쏟아져 들어갔다. 김홍식씨는 20세밖에 안 되는 청년이었지만 의분심이 나서 김윤호란 주동인물이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것을 뒷다리를 잡아당겨 끌어내렸다. 그러나 김윤호씨는 나가떨어지며 죽게 되었다. 살인이 났다고 큰 소동이 났다. 그때「어비손」(세브란스병원 원장)박사가 이 광경을 보고 『이사람 죽은게 아니오』하면서 코에다가 찬물을 끼얹으니까 벌떡 일어났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또 하나는 김홍식씨가 철공과를 졸업하고 Y직원이 되어 환등 돌리는 일을 맡아했다. 그랬더니 Y직원들끼리도 환등 돌리는 일을 천하게 여기고 언제나 철공과 직원들을 푸대접했다. 그중에도 최상호란 선생이 제일 말이 많고 거만하게 군다는 소문이었다.
「크리스머스」때였다. 환등 돌리는 일이 많아지고 한창 분주한 때에 또다시 그런 소리가들려왔다. 김홍식씨는 잔득 화가 나서 최상호씨가 있는 방으로 찾아갔다. 문을 꽝 차고 들어가 단박 『이자식, 너 언제 이러저러한 일이 있지? 바로 대지 않으면 죽여!』하고 위협을 했다. 최상호씨는 김홍식씨가 유도꾼이며 쌈꾼인줄 알기 때문에 겁이 나서 창문으로 빠져나가다가 저 혼자서 큰 부상을 했다.
이상재선생은 김홍식이란 놈이 때려서 그런 줄만 알고 대로하여 김씨를 불러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했다. 김씨는 월남선생도 자기를 천대한다 싶어 울면서 집에 돌아와 누워버렸다.
그러자 YMCA 안에는 큰 난리가 났다. 왜냐하면 환등 돌리는 기술은 김홍식밖에 없는데 미리 광고한「크리스머스」순서를 보러 사람이 막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여러번 보내어 김씨를 나오라고 했다. 하나 김씨는 절대로 안 나갔다. 나중에는 월남선생이 직접 찾아갔다. 김홍식씨의 아버님은 깜짝 놀라면서 자기 아들에게『월남선생이 일부러 찾아 오셨는데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월남선생을 만나보라고 했다.
그러자 김홍식씨는『나는 산 월남선생은 만나도 죽은 월남선생은 안 만나요』했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아버지는 대통으로 머리를 때려서 그때에 난 흠이 지금도 있다.
그 뒤 김홍식씨가 상해로 갈 때 월남선생이『홍식아! 너 언젠가 나를 죽은 월남이라고 했지? 그때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너를 엄나무 가시 위에 엎어놓고 흠뻑 때려주어도 마음이 안풀릴 것 같더라』하면서 손을 잡고 부디 잘 가서 훌륭한 일을 많이 하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 뒤 김홍식씨는 상해에 가서 임시정부 요인들을 도와드리며 충성을 다했다. 특히 이승만박사의 비밀편지를 휴대하고 여러번 국내에 잠입했다. 그 비밀편지가 무슨 내용인지는 물론 몰랐다. 구두 밑창에 깔아 넣고 온 것인만큼 월남선생을 찾아가서 『선생님, 구두속에 편지 있어요』하고 벗어놓고 오곤 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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