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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가축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사람은 집을 짓는 것을 배웠는데 집의 집 (환경)을 짓는 것은 아직 못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서울 인사동 거리를 한 외국인과 같이 지나가다가 1층부터 3층까지의 창문에 철창이 걸려있는 집을 가리켜 감옥입니까? 가축병원입니까? 하고 물어서 매우 당황한 적이 있다. 집 둘레의 높은 담과 그 위에 얹혀진 철조망을 보면 자기만을 위해서 지은 집이고 외부 또는 자연과는 등지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집을 짓는 동물은 인간 이외에도 많이 있다. 까치도 집을 짓고 꿀벌도 집을 짓는다. 이러한 동물이 집을 짓는 것과 사람이 집을 짓는 것과 다르다 할 수 있는 점은 동물은 자기를 위해서만 집을 짓는데 사람은 남을 위해서도 집을 지을 줄 안다는 것이다.
즉 남이나 자연에 어떤 영향이나 관계가 있을 것인가 알고 집을 짓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인간은 매우 열심히 자연을 파괴하면서, 인간에게 적합한 자연은 무엇인가 임의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자연은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자연은 항상 인간의 손이 가지 않으면 즉각 망가질 뿐 아니라 때때로 해가 미치게 된다.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나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금까지는 잘 자연에 적응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려 하고 자기 생활 환경을 새로이 만들어 보려하는 노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도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어쩌면 현 단계가 그 한도일는지 모르겠다.
인간 존재 자체도 자연이고 보면 인공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은 제2의 자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이 제2자연 즉 인공 환경에도 적응해야 할 것인데 될 말인지 알 수 없다. 지금 환경을 만든다, 집을 짓는다 하는 것은 역시 따지고 보면 단지 가축으로서의 인간을 풍우로부터 보호한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현재 인간이 만들고 짓고 있는 것은 자기 가축화 작업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컨대 균일 콘크리트 상자(?)(아파트)에 마구 밀어 넣는 작업등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을 좀더 기본적인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 즉 동물로서의 인간,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자연의 본질은 무엇인가 등등 전부를 포함시켜서 생태학적인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 문제니, 문화 문제니 왈가왈부하는 사이에 더욱 근본적인 것을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과학만 하더라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주변 과학으로 끝날 수도 있다. 진지한 의미에서의 인간학 따위의 것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 농촌에 가보면 자기 먹을 쌀은 만든다 하더라도 나머지는 모두 돈주고 사야 한다. 슬프게도 바가지까지 합성 수지로 만들어 팔고 있다. 온돌에 땔 것도 운이 좋아야 뒷산에서 거둘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연탄이라도 사야한다. 옛날 농촌은 안 그랬다. 먹을 것, 땔 것, 입을 것, 생활에 필요한 것 모두 자연 속에서 자급 자족이 가능했다. 인간 가축화는 없었다. 그런데 도시를 보면 식량으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것 전부를 돈을 주고 사야만 한다. 도시인은 꼼짝없이 쇠사슬에 묶인 허약한 가축화한 인간이다. 물·공기 오염 등 각종 공해를 짊어지고 철창 집에 담을 둘러 철조망 속에서 겨우 숨쉬고서 계속 자기 가축화 작업 중이니 정말 남의 일이라 하여 넘길 일이 아닐 것 같다.
김수근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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