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그림편지] 바위에 붙은 이끼 봄비에 기지개 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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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오늘부터 토요일마다 진밭골에서 띄우는 '김봉준의 그림 편지'를 싣습니다.

김봉준(49.사진)씨는 1980년대에 민중미술 동인인 '두렁'을 만들어 걸개그림과 목판화 등 현장 미술 분야에서 활동했던 판화가입니다.

민주화 운동 전선에서 문화패로 일하다 87년에는 부천에서 풀뿌리 문화운동을 펼쳤고, 11년 전부터 강원도 원주 소재 진밭마을(취병 2리)에 '미술의 집 산아리'를 내고 붓그림.목판화.흙조각 등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인간이 잊고 있는 여러 가지 근원을 돌아보는 그가 우리의 정신적 도약을 바라며 보내는 글과 그림 속에서 희망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봄은 분명 봄입니다. 겉은 겨울인데 속은 봄이 오고 있는 산골입니다. 메마른 검불 새새 다년생 풀은 벌써 녹색을 띠기 시작했고 바위에 붙은 이끼는 봄비에 기지개를 켭니다. 메말랐던 냇물이 소리내어 흐릅니다.

불어난 내를 건너기 위해 징검돌을 하나 놓았습니다. 개울 건너 남향받이 잽히골은 봄 내음이 더 진합니다. 서낭나무에 붙은 이끼는 솔잎만큼 푸르러 졌습니다. 겨우내 홀로 푸르던 솔은 이제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새는 빈 산 어디서 무엇으로 추운 겨울을 이기다 새떼가 되어 다시 나타났을까요.

짧지도 않은 세월
한 번도 거르지 아니하시고
꼭 이맘때면 찾아오셔서 문 두드려 불러내시니
쫑긋하여 몸 둘 바를 모릅니다.
은혜롭습니다. 나의 천사여!
이런 날을 위해 내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내 평생 몇 번 더 맞이할지 모르는 당신,
당신으로 인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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