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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 반 시비와 교육의 자주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무릇 모든 제도에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지만,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실시케 된 중학무시험 진학제도 그 예외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문교부는 최근 다시 국민학교 과정에서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과외공부의 폐풍이 학생 자신들과 그 학부모들에게 미치는 교육적·사회적 부작용을 무게 우려, 고교 입시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는 한편, 또 서울시 교육감은 별도 통첩을 보내, 관내 모든 중학교에서의 우·열 반 편성을 일절 중지케 한다고 발표함으로써 항간에 많은 시비를 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문교당국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무시험 진학제의 부산물로 이미 표면화한 각종 병리적 현상을 시정하려는 노력의 일단으로서 이해할 수도 있으나, 특히 후자의 경우와 같이, 덮여 놓고 우·열 반 편성을 금지케 하고, 그 대신 일률적으로 이른바 베 짜기 식 학급편성을 강권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폐단을 자초하는 소이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무시험 진학제의 실시 후 이미 3년째에 접어든 서울시내 공·사립 중학교에서의 이른바 우·열 반 편성에 관한 시비는 결코 작금에 처음 시작된 일이 아닌 줄 우리는 알고 있다.
당국은 이 제도를 처음 실시했던 지난 69학년도에도 이번과 같은 일률적인 금지 방침을 시달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뒤 학교마다 상당기간의 실지체험을 통해 각종형태의 우·열 반 편성이 성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폐지되기도 했던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생각컨대, 이것은 IQ 70 이하의 지진아로부터 IQ 130 이상의 뛰어난 지능을 가진 아동에 이르기까지, 매우 이질적인 학습집단을 혼성 수용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각종 교육적 문젯점 등을 극복키 위해, 각 학교가 저마다 독자적인 교육 목표의 설정과 이에 따르는 독특한 교과 운영방식의 개발이 불가피했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생각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학교에 따라서는 단순한 지능별·종합 성적 순위별 학급편성을 시도해보기도 했고, 또 중요 도구 교과별 우·열 반 편성을 실험해보기도 했는가 하면, 또 어떤 학교에서는 그로 인한 일부 학부형의 반발과 또 학생들 자신의 우열감으로 인한 반목질시 내지 학생 상호간의 협동심 결여현상 등 몇 가지 두드러진 부작용이 표면화함으로써 일단 실시해본 우·열 반 편성을 자주적으로 해체한 예도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자주적인 학사운영은 어느 모로나 건전한 교육 운영방식이라 할 것이며, 이처럼 자명한 이치를 무릅쓰고 당국이 이제 또 다시 그 일률적 금지나 그 대안의 일률적 실시를 강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문교 당국자에게 어떤 제도이든 표면상에 나타난 몇 가지 단기적인 현상이나 단편적 이해득실을 가지고, 걸핏하면 일률적으로 특정사항의 금지 또는 권장을 함부로 지시하는 공문을 남발하는 것이 교육발전의 원동력이라 할 교육의 자주성을 해치는 소이임을 지적하면서 이와 같은 작풍은 단연 시정돼야 한다고 경고하고 싶다.
무시험 진학제 실시 후 나타난 몇 가지 부작용이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문교부가 중앙 교육연구소에 위촉했다고 하는 고교 입시제도의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연구하는 것도 좋은 일이며 ,또 이미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진「원전학습방법」을 권장하고 베 짜기 식 학급편성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학급편성 모델 내지 교과 운영방식을 널리 소개하여 각 학교로 하여금 자주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장학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중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더욱 바람직한 것은 오늘날 서구선진국가 사이에서 점차 일반화 경향을 걷고 있는 중학과정의 콤프리헨시브·스쿨화 방식(종합교과운영방식) 을 도입, 이질적인 학습집단의 다양한 욕구와 관심을 계발하는 보다 근원적인 대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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