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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만 먹고 자란 스페인 흑돼지 고기 부드럽고도 깊은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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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22면

1 가을 스페셜 이베리코 돼지 목살 스튜. 오래 끓여서 맛이 잘 배어든 부드럽고 쫄깃한 고기 맛이 일품이다. 작두콩과 스위스 파스타 맛도 고기와 잘 어울린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따가웠던 햇살은 이제는 말랑말랑해져서 따사롭고, 문득 얼굴을 휘감아 도는 바람 한 줄기가 상큼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딘가 걷고 싶어진다. 그냥 목적지 없이 날씨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걷다가 길 모퉁이에서 만나는 작은 카페에서 차를 한잔 해도 좋겠지. 어디선가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가 흘러나올지도 몰라. 그러다가 멋진 맛집에서 식사도 해야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24> ‘가스트로통’의 돼지목살 스튜

이럴 때 거닐기 좋은 곳 중 하나가 경복궁 옆 서촌이다. 궁 반대편에 있는 삼청동이나 북촌은 이제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이곳은 아직도 호젓하다. 궁궐을 끼고 도는 돌담 길은 청와대로 향하는 길이라 차들도 많지가 않아서 걷는 느낌이 더 좋다. 은행나무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으면서 가을이 무르익으면 지나는 바람에 노란 은행잎들 우수수 날리곤 하는 것이 꿈꾸듯이 아름답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곳곳에 분위기 좋고 실력 있는 맛집들이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는 것이 서촌의 또 다른 매력이다. 예로부터 서촌에는 전문직으로 일하던 중인이나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다. 그 내력 덕분인지 지금도 이곳에는 장인(마이스터: Meister) 혹은 장인이 되기를 꿈꾸는 오너 셰프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중에서도 ‘가스트로통’이라고 하는 곳이 있다. 이름의 발음이 좀 생소하긴 하지만 문자 속은 깊다. ‘미식(Gastronomy)’으로 사람들과 ‘통’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지었다는 합성어 이름이다.

2 스위스 지방에서 만나는 예쁜 샬레 같은 외부 모습 3 내부. 최대 60석밖에 안 되는 규모여서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이곳은 요리사 중에서도 최고의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 호텔 총주방장 출신의 오너 셰프가 와인 전문가인 부인과 함께 운영하는 유러피안(European) 레스토랑이다. 30년 경력 중 우리나라에 있는 유명 호텔들의 총주방장으로 20여 년을 일한 스위스인 롤란드 히니(Roland Hinni·58) 셰프와 와인 마케터 11년 경력의 부인 김영심(46) 대표가 2011년에 문을 열었다. 호텔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로 만나서 결혼을 하고 부인의 나라인 한국에 정착을 한 부부가 그동안 각자 쌓아온 내공을 함께 모아서 자신들만의 작품으로 만든 곳이다.

이곳에서는 스위스·독일·프랑스 등 중부 유럽 지역의 음식을 주로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찜으로 하는 고기 요리가 대표적이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재료도 미리 숙성을 해서 준비해야 하고 요리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신에 불로 굽는 것보다는 훨씬 섬세하게 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을 여러 겹으로 느낄 수 있는 고급 조리 방법이다. 와인 전문가답게 김영심 대표가 직접 골라낸 와인 리스트도 특별하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이 좋고 자신들의 요리와 잘 어울리는 와인들을 골라 200여 가지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계절마다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데 이번 가을에는 돼지 목살을 이용한 스튜를 내놓아서 단골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메뉴 이름은 ‘작두콩을 곁들인, 도토리만 먹인 100% 순수 이베리코 돼지 목살 스튜’다. 스페인 이베리코(Iberico) 지방에서 방목을 해서 도토리만 먹고 자란 흑돼지 고기를 사용한다. 국산 돼지고기보다는 두 배가량 비싼 귀하신 몸이다.

이 고기와 여러 가지 야채, 육수, 와인, 삶은 작두콩을 함께 넣어서 약한 불에서 두 시간가량 끓여서 만든다. 여기에 스위스식 파스타 크뇌플리(Knoepfli)를 곁들여서 담아내는데, 그 맛이 참 인상적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매력적이고 가을 날씨처럼 온화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담백한 이베리코 흑돼지 고기의 맛이 고급스럽고, 끓이면서 우러나온 국물이 아주 훌륭한 소스 역할을 해서 고기에 풍성한 맛을 더해준다. 국물 맛이 잘 배어들어서 맛있게 씹히는 작두콩과 올챙이 모양의 크뇌플리 파스타가 고기 맛과 조화를 이루면서 부드러운 깊은 맛을 완성해 주고 있다.

작지만 자신들만의 레스토랑을 부부가 함께 운영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 무척 행복하다는 이 부부는 서로 자기를 만났으니 당신은 행복한 거라고 티격태격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손님들을 맞고 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고 지금 모습 이대로 열심히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는 유쾌한 ‘한-스’ 합작 부부가 함께 하는 이 멋진 식당은 은행나무가 서 있는 자하문로 길가 우체국 앞에서 빨간 우체통 옆 골목길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가스트로통 :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25-2. 전화 02-730-4162. 휴일에도 영업한다. 이베리코 돼지 목살 스튜 점심 3만1000원. 애피타이저, 수프/샐러드, 후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음식, 사진, 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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