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부모 사진 제시|필화는 정녕 내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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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삽보로=조동오·윤용남 특파원】북괴 빙상 선수 한필화가 동생임을 확인하기 위해 9일 밤 JAL기편으로 삽보로에 온 한국의 한계화씨 (39)는 10일 상오 투숙한 「그랜드·호텔」에서 딸 영희양과 자리를 같이하여 기자 회견을 갖고 『한필화는 내동생임이 틀림없다』고 말하고 1·4후퇴 피난 당시부터 간직했던 부모의 사진을 제시하며 『여기 세계 만방의 기자들이 모였겠지만 남과 북으로 혈육이 갈라져 만나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통곡했다.
주일 한국 특파원과 일본 기자 등 1백여명의 보도진이 참석한 자리에서 한씨는 『만일 동생이 북한의 말못할 사정 때문에 언니인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지 못해도 자기 모습을 보고 돌아가 북한의 부모 형제에게 언니가 한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만 전해주는 것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한필화가 동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추측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7·8년 전, 함흥에 있을 때 숭실여중의 체육 선생이던 김정섭씨가 일본에서 한이 「스케이팅」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 『모습이나 자태가 닮았다』는 것을 전해주면서 동생이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어 이때부터 관심을 가져왔으며 함께 피난 온 친구들도 한필화가 동생일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스포츠」일가인 자기 집은 북한에서 중류 이상의 생활을 했다고 말하고 1·4 후퇴 당시 함흥에서 갖고 왔다가 이번에 서울에서 찾아내어 간직했던 아버지의 스케이트 대회 때의 사진과 사이클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의 사진, 북한의 고모의 사진 등을 기자들에게 제시하면서 당시 6세였던 필화의 증거 될만한 사진은 없으나 만약 내동생이라면 이런 사진들을 보면 내가 형임을 한도 인식해줄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씨는 1시간 동안의 회견 도중 수차에 걸쳐 울음을 터뜨리며 『여기 세계 만방의 기자들이 모였겠지만 남과 북으로 혈육이 갈라져 만나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책상을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씨는 『필화가 나를 언니로 인지하지 않는 이유를 자신이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신금단도 처음에는 자기 아버지를 부인했지 않느냐?』고 기자들에게 반문하고, 『북괴가 나의 면회 요청을 거절하는 한이 있어도 서로 혈육임을 확인만 하면 족한 것이니 꼭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어 『일본인들은 같은 민족끼리 사는데 우리 민족, 더욱 수도 얼마 안되고 좁은 땅에서 부모 형제가 갈려 살고 소식을 몰라 이런 회견을 가져야 하느냐?』고 통곡했다.
한씨는 또 『필화가 고향을 진남포라 얘기한 것은 6·25 동란 당시 부모와 같이 서쪽으로 피난 나오는 길에 진남포 부근에 떨어져 거기서 살게됐다는 얘기를 인편에 들었는데 아마 그 때문이 아닌 가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필화가 집안 여자 형제들의 돌림자가 필자라고 말하나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우리 집안은 남자들은 석자 돌림이고, 여자들은 화자 돌림』이라고 설명했으며 『만약에 이 자리에 북괴에서 온 기자가 있다면 내가 이렇게 살아서 잔뼈가 굵어졌고, 내가 낳은 딸이 「프리·올림픽」 경기에 참가하게 된 것 등 우리의 안부를 북한에 있는 부모들에 꼭 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지었다.
한씨는 이번에 일본에 온 경위에 대해 외무부에 진정한 결과 많은 도움을 받았고 재일 거류민단의 초청과 경비 부담으로 일본에 왔다고 말했다.
한편 한씨의 딸인 김영희 선수는 『이모라는 한필화 선수를 꼭 만나고 싶으냐』 『또 이번 문제 때문에 경기에 지장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본적도 없고 정도 없어 꼭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이번 일로 경기에는 아무 지장도 못 줘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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