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 마이너스」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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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RH 마이너스」형 피를 구합니다.』지난 7일 하오 4시 AFKN의 임시 「스파트」방송을 듣고 10여명의 미국인이 달려왔다. 이들의 헌혈로 사경에 있던 한국의 한 영아가 생명을 찾았다. S종합 병원에서 있었던 인정가화-.
RH형의 피를 가진 사람은 한국인의 경우 0·7%밖에 안 된다. 1천명에 겨우 7명인 셈이 된다. 그러나 미국인의 경우는 우리보다 거의 10배나 많다. 1백명 중 7명 내지 10명은 RH형이다. 한국에서 RH형의 수혈이 있을 때면 대개는 미국인의 헌혈을 받는다. 그만큼 우리 나라에선 그 혈액을 구하기가 힘든다. 그러나 동·서양인 사이에 혈액에 대한 의식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동양인의 도덕 관념 속엔 살생에 대한 금기 의식이 깊다. 화랑 오계에도 「살생 유택」이 들어있다. 동양인은 이런 면에선 다분히 식물적이다. 한의의 발달사를 보아도 수술과 같은 방법이 없다. 대개는 내복약으로 그것도 초식의 약재로 병을 다스린다.
그러나 서양인은 카니벌 (육식) 의 관념이 깊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비프·스테이크」같은 것이 실감 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헌혈에 대한 이해가 빠른 것도 그런 육식적인 사고방식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정상 성인의 경우 4백50cc 내지는 5백cc정도의 헌혈을 해도 건강엔 별 지장이 없다. 대개 3주 또는 4주의 시간이 가면 그만한 양의 피는 복구가 된다. 조물주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그만한 여분의 혈액을 감안해 주었다.
병원에서 헌혈을 할 경우는 그보다 훨씬 적은 2백30cc 내지 2백cc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적은 출혈에도 쉽게 공포감에 사로잡히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나 생리학적으로 그것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우리 나라의 혈액 은행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혈액에 대한 「터부」의식, 게다가 각박한 세태의 「에고이즘」까지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혈액 은행은 누구나 비상시를 대비해서 정상 건강 상태일 때 자기 피를 예치해 두는 곳이다. 따라서 여차한 때는 그만한 피를 찾아 쓸 수 있다. 혹은 그 이상의 피도 공급받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도 번거로 울 것이 없는 당연 행위이다. 아마도 피를 팔 수 있는 나라는 이 지상에서 몇 나라 되지 않을 것 같다. 결국은 사회 복지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유가 생길 때나 혈액 은행 제구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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